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비가 오면 비행기 운항에 차질을 빚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지나가는 소나기였다. 짚 두 대에 짐을 싣고 마네반장을 출발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우리 출발을 지켜본다. 참으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날씨는 아침부터 푹푹 찐다. 카트만두로 돌아가기 위해 툼링타르에서 다시 고르카 항공기에 올랐다. 두 대가 동시에 들어와 연달아 이륙을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단식 논밭에서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산자락을 깍아 조그만 밭떼기를 만들었고 거기서 나는 소출로 몇 식구가 먹고 살 것이다. 그래도 이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니 세상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물론 힌두교나 티벳 불교같은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는 하겠지만 네팔 사람들은 비록 초라한 행색임에도 마음만은 그리 초라하지 않다. 아마 행복지수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물질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네팔에 오면 내 자신이 이율배반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초라한 생활 터전이 못내 안쓰럽다가도 내 마음 한 구석엔 이들은 물질 문명을 탐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야 내가 힘들 때마다 이곳에 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비행기에서 산 위까지 한 평 밭을 일군 네팔 사람들의 삶을 보고 상념에 잠겼다가 깨어났더니 비행기는 어느 덧 카트만두에 도착해 있었다. 카트만두의 무더위가 우릴 반긴다. 안나푸르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내 구경을 나갈까 하다가 너무 더워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저녁은 대행사 장정모 사장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특별히 우설을 준비했는데 트레킹 마무리로서 너무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여행 요약>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칼루를 다녀온 기록이다. 2007 4 22일 네팔 카트만두를 출발해 593일 카트만두로 되돌아왔다. 이 트레킹에 대해서는 <월간 마운틴> 2007 6월호에 기고한 바 있으며, KBS 일요다큐 산에도 두 차례에 걸쳐 방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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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위를 피하자는 의견에 출발 시각을 아침 6시로 조정했다. 다행히 구름이 잔뜩 끼어 날씨가 그리 덥지는 않았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몇 개 마을을 지났다. 절구통에 곡식을 빻는 아가씨들, 밥 짓는 여인, 커다란 등짐을 나르는 처녀들, 손님용 달밧을 준비하는 길거리 식당 아줌마 등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 그들이 고마웠다. 치치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마칼루를 다녀온 지난 2주 사이에 도로 공사 진척이 꽤 많이 되었다. 이런 속도라면 마네반장까지 금방 완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구간에는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한 번 지났던 길이기에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전에 못보고 지나친 풍물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었다. 네팔, 중에서도 히말라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라 할까, 세월의 흐름이 멈춰진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네처럼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고 뭔가에기는 듯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 시각에서 본다면 천년을 아무런 변화없이 무미건조하게 사는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자연에 기대어 사는 파란만장한 삶이 있으리라.

 

눈을 시원하게 하는 풍경이 이어져 마음은 행복했지만 마네반장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다리품에 꽤 힘이 들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선 사진을 찍는다 시간을 끌긴 했지만 그래도 무척 먼 길이다. 마네반장에서 우리를 환호하게 만든 것은 시원한 맥주. 가게에 냉장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시원함, 그 고마움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네반장에서 무슨 축제가 있다고 지난 번 텐트를 쳤던 운동장을 쓸 수가 없었다. 마을 입구 공터에 텐트를 쳤다. 문명으로 귀환한 듯 여유롭게 시내를 구경했다. 200m 되는 도로 양쪽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지난 번에 들렀던 도너츠 집에서 럭시를 몇 병 사서 옹추에게 주었다.

 

한데 들려오는 소식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얼마 전에 마오이스트 한 명이 살해되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버스나 짚 모두 발이 묶여 버렸다. 다행인 것은 오늘 저녁에 파업이 끝이 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공항까지 몇 시간을 또 걸어야 한다. 한 대장과 선배님 몇 분 모시고 도너츠 집으로 가서 럭시를 샀다. 술 김에 비박을 하겠다고 학교 처마 밑에서 잠을 자다가 모기에 쫓겨 결국은 텐트로 들어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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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두아에서 상큼한 아침 시간을 맞았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서늘하면서도 맑았다. 오전 6 40, 이른 시각임에도 아이들 네 명이 마당에 펼친 멍석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책에 열심히 영어 단어를 적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학교도 아니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멍석에 앉아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다니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이 아이들이 나중에 네팔의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기서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도 있었다. 열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돌박이 아이를 등에 업고 있어서 처음엔 동생을 들처업고 나온 누나로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아기는 여자 아이의 아들이란다. 조혼 풍속이 있는 히말라야 일부 지역에서는 열 두셋이면 여자 아이들은 시집갈 준비를 한단다. 일찍 늙고 일찍 죽는 이유가 이 조혼 풍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남녀 모두 50, 60세를 넘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내가 감 내놔라 팥 내놔라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입안이 좀 씁쓸했다.

 

오늘은 다시 아룬 강을 건넌다. 이번 트레킹에서 마지막 고생길이라 할까. 해발 1,510m에 있는 세두아에서 고도 700m의 아룬 강으로 내려섰다가 강을 건넌 후 다시 1,500m 고도에 있는 눔으로 오른다. 등반고도 800m짜리 산을 하나 오르내리는 것과 같았다. 내리막으로 시작하는 것이 다르긴 했지만. 무더위 속에서 두 시간을 걸어 내려가 아룬 강에 도착했다. 내리막 구간이야 쉬웠지만 눔까지 세 시간 이상을 줄창 오르는 경사길은 꽤나 힘이 들었다. 세두아에서 눔까지 짚라인(Zipline)을 연결하면 단숨에 건너갈텐데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눔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여기서 묵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맥주 가격이 많이 싸진 탓에 맥주를 축내며 시간을 보내다가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방문했다. 꼬마들이 수업을 받다 내 출현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수업을 계속하라 제스처를 쓰고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히말라야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순진무구하지는 않겠지만 여기 아이들 정말 천사같다. 보고 듣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 그리 약지도 못하다. 그저 지나가는 외국인 트레커들을 좇아다니며 사탕이나 볼펜달라는 것이 전부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다지 거부반응이 없어 솔직히 난 너무 좋았다.

 

오늘 저녁에도 염소 고기가 나왔다. 최고령 참가자인 정한영 교수께서 염소를 한 마리 사신 것이다. 매일 저녁 부식 기부가 줄을 잇는다. 한 대장 부탁을 받은 요리사 템바가 염소의 몇 가지 부위를 순서대로 요리해서 가지고 나왔다. 골부터 시작해 혀, 염통, 내장, 고기 순으로 나오다가 마지막은 국으로 장식을 했다. 한 대장 덕분에 별것 다 먹어 본다. 럭시가 돌면서 취기가 꽤나 올랐다. 텐트로 잠시 도망쳤다가 바로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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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으로 이동하는 양과 염소들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풀을 찾아 본격적으로 산에 드는 시기인 모양이다. 하긴 벌써 5월이니 고산지대인 히말라야도 봄이라 부를 수 있겠다. 고소 적응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다들 발걸음이 가볍다.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잠시 걸음을 멈추면 내 앞을 걷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만큼 하산에 스피드가 붙었다. 산을 오를 때는 타시가온에서 콩마까지 하루 종일 걸었지만 그 길을 역으로 내려갈 때는 불과 두세 시간 걸었던 것 같다.

  

타시가온에 들어서기 직전, 산에서 내려오는 계류에 머리를 감았다. 이 얼마만에 때빼고 광내는 것인가. 2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는데도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이제 머리까지 감았으니 우리 입장에선 문명으로의 귀환이라 할만했다. 머리 감는 행위 하나에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아니한가. 타시가온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를 반기는 꼬마들이 있어서 좋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한 무리의 트레커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루크라로 라운드 트레킹을 한다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해발 고도를 낮춰 2,000m 아래로 내려왔더니 서늘했던 고지대가 그리울 정도로 햇빛이 강하게 내리쬔다. 무더위에 녹아날 지경이다. 무더운 날씨를 싫어하는 나에겐 또 다시 인고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곳이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그런 것은 그림의 떡일터. 카트만두에 가서 배 터지게 먹자고 스스로를 달래 본다. 한 대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후미로 도착했다.

 

오늘 야영지는 세두아. 저녁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 쾌적했다. 저녁으론 닭도리탕이 나왔다. 김인식 회장께서 닭을 7마리 사서 일행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 맥주 10병을 쐈다. 사실은 한 대장이 은근히 눈치를 주긴 했지만서도. 누가 양주를 꺼내와 폭탄주가 한 순배 돌았다. 우리 술 파티를 시샘하듯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축축한 텐트 안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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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십튼 패스를 오를 때보다야 부담이 한결 덜했지만 어쨌든 오늘도 십튼 패스를 올라야 한다. 전에 비해 눈이 많이 녹았다. 하지만 강한 햇빛이 내리 쬐는 날씨에 눈 위를 걷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까지 걸쳤지만 살이 익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까지 올랐던 몸이라 하더라도 해발 4,170m의 십튼 패스를 넘는 일은 여전히 힘이 들었다.

 

점심을 먹기로 했던 콩마에 텐트를 쳤다. 하루 일정을 일찍 마감한 것이다. 십튼 패스를 넘으며 지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여유만만해졌다. 술 한 잔하는 사람들, 텐트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 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포터들도 일찌감치 도박판을 벌였다. 나도 매점에서 럭시 한 잔을 사서 마셨더니 얼굴이 붉으죽죽해졌다. 맥주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고도를 낮추고 있음을 실감했다. 당말에서 600루피 받던 병맥주 한 병이 여기선 300루피를 받는다.

 

이태리에서 왔다는 리카르도를 콩마에서 만났다. 포터 세 명을 고용해 이곳까지 올라왔다. 이태리 어디 사냐고 물었더니 메스너가 사는 알프스 지역에서 왔단다. 리카르도에게 럭시 한 잔을 사주었다. 고추장 찍은 멸치를 안주로 건네주었더니 무척 신기해 하며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이 친구 네팔을 여행한다면서 럭시를 처음으로 마신단다. 저녁도 우리 일행과 어울려 한국식으로 먹었다. 럭시에 이어 김치, 된장국까지 먹었으니 위가 놀란만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뭔 일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했던 내가 오히려 무색해졌다.

 

물통을 가지러 텐트로 갔다. 끓는 물 넣은 물통을 침낭 속에 넣으면 그 열기로 추위를 모르고 하룻밤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잠시 누워 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술 기운이 올라 주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리카르도도 텐트로 돌아갔고 매점도 한산했다. 양치와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잠시 머리를 감을까 고민을 했지만 아직도 고도가 3,530m라 하루 더 참기로 했다. 뜨거운 물을 받아 텐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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