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에서 나와 모처럼 아침 산책을 즐겼다. 강가에는 소나무와 랄리구라스가 보인다. 이는 우리가 수목한계선 아래로 내려섰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바룬 강물에 고양이 세수도 했다. 열흘만에 세수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니 난 영락없는 히말라야 체질인 모양이다. 국립공원 직원이 우리가 묵은 야영장을 찾았다. 트레킹 기간 중 불편했던 일은 없었는지 묻는다. 이제 네팔 국립공원도 서비스가 대폭 나아지려나 싶었다.

 

바룬 강을 따라 또 다시 너덜지대를 걷는다. 설산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주변엔 하늘로 우뚝 솟은 암봉이 나타났다. 클라이머들이 좋아할만한 암봉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 나라라면 멋진 이름이 하나씩 붙었을 봉우리들이지만 여기선 그저 무명봉이다. 바룬 강을 벗어나 급경사 오르막을 타기 시작했다. 다시 십튼 패스로 오르기 위해 땀깨나 흘려야 하는 구간이 시작된 것이다.

 

뭄북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토막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뭄북엔 염소와 양을 치는 부부가 들어와 텐트를 치고 살고 있었다. 봄에 들어와 가을에 나간다 하니 사람사는 세상으로 가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인적없는 산 속에서 단둘이 외롭게 생활하다가 우리가 나타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한 대장이 그들에게서 염소 한 마리를 사라고 했다.

 

도바테에 다시 텐트를 쳤다. 땅도 고르지 않고 공간도 좁아 텐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쳐야 했다. 뭄북에서 산 염소가 오늘 저녁 우리의 제물이 되었다. 우리 대원들뿐만 아니라 포터들까지 포식을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도마가 여기에서도 보이는 것이었다.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다. 이 정도로 억척스러워야 큰 돈을 벌겠지. 옹추와 스탭들을 데려가 럭시 한 잔씩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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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말 베이스 캠프를 출발하면서 마칼루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고비를 넘어서자 마칼루의 모습이 우리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마칼루와 헤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 하산 일정에서는 더 이상 마칼루를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원들은 섭섭함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나만 홀로 마칼루를 짝사랑했나? 다들 부담없는 하산길이라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산악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산악인 블라디슬라브 테르쥴(Vladyslav Terzyul)의 추모 동판을 설치하기 위해 마칼루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그의 가족, 친구들이었다. 그는 3년 전 마칼루를 올라 8,000m 14좌를 완등하고 하산하던 길에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단다. 한 대장에게 14좌 완등 기록을 적은 티셔츠를 하나 건넨다.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그는 시샤팡마 등정 기록에 시비가 걸려 공식적으로 14좌 완등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포터들이 짐을 내려놓고 갈길을 멈췄다. 당말의 매점 주인이 장작값을 주기 전에는 못간다 길을 막은 것이다. 19명의 포터들이 나흘을 묵으며 장작을 가져다 불을 피웠는데, 그 대금으로 7,700루피를 청구한 것이다. 그것은 로지 주인과 포터들이 해결할 문제라고 우리는 한 발 물러섰다. 대책없이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포터들이 얼마씩 돈을 걷어 로지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를 봉으로 봤던 로지 주인은 우리에게 바가지 씌우려다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된 것이다. 어떤 물품이던 외국인과 현지인에게 받는 금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리 카르카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강가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야영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풀밭을 기면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기에 뭐하는 것이냐 물어 보았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바로 동충하초. 한 대장이 그들이 잡은 동충하초를 몇 개 사서 나에게 하나를 준다. 한 개에 20루피씩 주었다 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동충하초라는 것을 보았다. 상행 구간에 만났던 도마가 여기에 올라와 있었다. 기막히게 돈 냄새를 잘 맡는다 감탄을 했다. 그래서 나도 도마에게 럭시 한 잔을 팔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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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었다. 이곳으로 오를 때 낙석 사고가 있었던 구간이라 출발시각을 앞당기기로 했다. 새벽녘 어스름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일찍 식사를 마치고 출발을 서둘렀다. 고산병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빨리 이 고지를 벗어나고 싶어하리라. 두 시간 가량 열심히 걸었을까. 우리 양옆에 있던 절벽이 사라지고 산자락이 제법 멀리 자리잡았다. 낙석 위험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멀리서 돌 구르는 소리는 요란했다.

 

선두는 어디를 지나는지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급히 쫓아갈 이유도 없기에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둘러본다. 그 때, 우리 오른쪽 뒤편으로 거대한 산군 하나가 나타났다. 꿈 속에서나 그리던 에베레스트가 우리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그 옆에 있는 로체와 로체샤르도 보인다. 이들을 맞을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다가오다니무심하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위를 찾아 그 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건한 마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올려다 보았다. 모처럼 한가하던 카메라가 다시 바빠졌다.

 

상행 구간에 무척이나 지겨웠던 바룬 빙하의 너덜지대를 또 걷는다. 무릎이 시큰거려도 멈출 수는 없는 일. 거의 3일간 너덜지대를 걸었으니 입에서 신물이 날만 하다. 우리가 걷는 너덜지대 아래에서 우렁찬 물소리가 들린다. 빙하 아래로 물이 개천이 되어 흐르는 것이다. 그 위를 이렇게 태연하게 걷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당말 베이스 캠프로 내려오면서 각양각색의 돌무늬가 시선을 끌었다. 바위로 생성되어 이렇게 계곡으로 떨어져 마모될 때까지 수 만년이 흘렀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이런 무늬를 보게 된다. 일행들과 떨어져 돌무늬에 관심을 보이다가 가장 늦게 당말 베이스에 도착했다.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도중에 삶은 계란과 감자로 요기를 해서 그런지 그리 시장하진 않았다.

 

텐트에 들어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갑자기 궂어지며 비바람에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때는 밖으로 나도는 것보다 침낭 안이 최고다. 어느 새 낮잠에 빠졌다. 이러다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큰일인데 하면서도 잠을 뿌리치지 못했다. 저녁을 일찍 먹으면 보통 10시간에서 11시간을 잠으로 때워야 하는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엄청난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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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이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날이 밝았다. 마칼루 정상에서 해가 돋는다 생각했는데 금방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텐트에 남기로 하고 10명만이 하이 베이스 캠프로 출발했다. 눈은 어디에도 없었고 끝없이 펼쳐진 너덜지대가 우릴 반길 뿐이다. 이럴 때 무릎 보호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이런 길을 걸을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상당한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마칼루 서벽을 보면서 발길을 재촉한다.

 

3,000m가 넘는 고도부터는 나름대로 호흡에 신경을 많이 썼다. 천천히 50보를 걷고 심호흡을 하는 식으로 꾸준히 걸었다. 급경사 오르막이라면 걸음을 30, 20보로 줄이면서 말이다. 그 덕분인지 하이 베이스 캠프까지 두통이나 구토, 무기력과 같은 고산병 증세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고산병으로 고생해 본 사람은 안다.

 

카트만두를 출발한 열흘이 지난 51일에야 해발 5,600m의 하이 베이스 캠프에 올라설 있었다. 무려 네 시간이나 걸렸다. 하이 캠프에 눈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모르겠다. 베이스 캠프가 눈으로 덮히면 쓰레기 찾기가 매우 어렵다. 마침 마칼루를 등반 중인 브라질 원정대의 마샤(Marcia) 우리의 취지를 듣고는 선뜻 쓰레기 봉투를 들고는 앞장서 우릴 안내한다. 그녀는 브라질 마칼루 원정대의 베이스 캠프 매니저였다.

 

대원과 스탭, 마샤까지 나서 약 두 시간에 걸쳐 쓰레기를 모았다. 각자 수거한 쓰레기가 작은 산처럼 수북이 쌓였다. 쓰레기 분류 작업을 통해 소각할 것은 따로 모아 마샤에게 원정대 철수 시점에 소각을 부탁했다. 원정대가 체류하는 기간에는 소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깡통은 돌로 찌그러뜨려 부피를 적게 다음 마대에 넣었다. 깡통 중에는 한국 상표가 선명한 꽁치, 골뱅이, 등도 있었다. 어느 원정대가 즐겼을 와인 병도 넣었다. 깡통과 병으로 가득한 마대의 쓰레기는 좋게도(?) 우리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까지 간다.

 

이제는 하산이 남았다. 머리를 강타하는 두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출발을 서둘렀다. 어차피 재패니스 캠프까지 갈 것이면 여유가 있는데 말이다. 그 지겨운 너덜지대를 다시 지나 재패니스 캠프로 돌아왔다. 하산길이라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는 것이 오를 때완 달랐다. 식당 텐트에 모여 하산 코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원래는 해발 6,000m가 넘는 이스트콜, 웨스트콜을 넘어 루크라로 빠지는 라운드 코스로 일정을 잡았으나, 대원들 컨디션을 보곤 한 대장은 무리라는 의견을 냈다. 두세 명을 빼곤 대원들도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가자는 의견이었다. 무더위에 녹아나고 무릎이 시큰거렸던 그 길이 그래도 가장 쉬운 코스라니 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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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장이 허리가 좋지 않음에도 하이 베이스 캠프로 운행을 결정했다. 본인 문제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출발 전 축구선수들처럼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여기서부터 하이 베이스 캠프까지는 하루 거리다. 하루를 푹 쉬었더니 컨디션이 좋아졌다. 고소 증세로 그렇게 힘들어 하는 대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조심해야 할 곳은 바로 오늘 구간이다. 당말을 출발하면 5,000m 고도를 들어서면서 하루 종일 이 고도에서 걷고 자야 하니 다들 긴장할 수밖에.

 

마칼루를 오른쪽에 끼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빙하를 따라 펼쳐진 모레인 지대에 엄청난 너덜지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무릎이 튼튼하다 해도 당해낼 없는 곳이었다. 돌들이 불안정해 우리를 더욱 긴장시킨다. 아차 하면 발목을 삐끗할 위험이 높아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었다. 멀리선 눈사태 나는 소리가 들리고 계곡 양 옆에 가파르게 솟은 절벽에서는 돌들이 굴러 떨어진다. 재수가 없어 돌에 머리라도 맞는다면 생명이 왔다갔다할 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위를 쳐다보기 바쁘다. 우리 운행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계곡 한 가운데 모여 감자와 달걀을 삶아 점심을 해결했다. 식욕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먹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 감자 삶을 물을 구할까 궁금했는데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가이드 한 친구가 빙하 어느 부위를 돌로 깨니까 거기서 물이 콸콸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이 친구들은 귀신같이 물줄기를 찾아낸다.

 

점심을 마치고 먼저 출발한 대원 중에서 사고가 났다. 오른쪽 절벽 아래를 걷던 유성삼 선배가 낙석에 허벅지를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환자 발생!”이란 외침에 대원, 스탭들이 득달같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옆에서 부축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속력은 더딜 수밖에. 한 대장이 옹추와 협의해 오늘 야영지를 재패니스 베이스 캠프로 변경했다. 서너 시간 일찍 운행을 마치게 된 것이다. 텐트 안에서 다친 부위를 확인했더니 그 사이에 환부가 시커멓게 멍이 들었고 엄청 붓기도 했다. 머리에 맞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원래는 하이 베이스 캠프에 올라 하룻밤을 묵기로 했던 일정이 부상자 발생으로 차질을 빚었다. 우리야 일찍 운행을 마쳐 내심 좋기만 했지만서도. 해발 5,400m인 재패니스 베이스 캠프에서의 하룻밤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대장이 일정을 조정했다. 텐트를 그대로 여기에 두고 내일 하이 베이스 캠프에 올라 청소를 마친 후 다시 여기서 하루를 묵겠다 공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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