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스톤 주립공원에서 마지막으로 산행에 나선 코스는 그리즐리 크릭 트레일. 뎀스터 하이웨이 기점에서 58.5km 지점에 산행 기점이 있다. 이 트레일은 그리즐리 패스를 넘어 모놀리스 산(Mt. Monolith) 아래에 위치한 세 개의 호수, 즉 그리즐리 호수와 디바이드(Divide) 호수, 그리고 테일러스(Talus)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간다. 각각의 호수에 캠핑장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어 백패킹 코스로는 그만이다. 툼스톤 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악 풍경 또한 대단해 백패커들이 많이 찾는다. 툼스톤 주립공원을 대표하는 풍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쉽게도 여기까지 가진 않았다.

 

산행 기점에 도착했더니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차에서 쉬겠다고 남았다. 세 명이 산행에 나섰다. 톱으로 나무를 잘라 놓은 곳을 지났다. 처음엔 벌목 현장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젊은이 네 명이 트레일 정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트레일을 가로막은 쓰러진 나무나 가지를 치우고 산길로 물이 흐르지 않도록 물길을 다른 데로 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고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업이 자원봉사인지, 공원에 소속된 인부들인지 궁금했지만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진 못했다.  

 

산자락이 모두 구름에 가려 시야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구름 아래로 보이는 단풍은 여기도 일품이었다. 눈 앞에 있는 계곡 전체가 마치 빨간색, 노란색, 오렌지색을 섞어 놓은 융단같았다. 베일에 싸인 듯 살짝 보여주는 풍경이 오히려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빗줄기가 그치지 않자, 어디까지 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리즐리 호수까지 23km를 당일에 왕복하자 마음을 먹었지만, 비가 오는 날씨에 차에서 기다리는 일행을 감안해 6km 지점까지만 갔다 오자고 했다. 3km 지점에 있는 리지에 올랐다.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도 대단했다. 이 정도만 보아도 툼스톤을 느끼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과 상의해 왕복 6km를 걷는 것으로 툼스톤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에 하산하는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4.03.09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도 무시무시한 그리즐리 크릭 ㅎㅎ
    이왕이면 돌산보다 불타는 붉은 산을 걷는게 더 흥겹겠어요...
    여긴 비가 오고 발에선 불이 나고~ 며칠 쉬고 있습니다...

    • 보리올 2014.03.09 1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도 매일 비가 옵니다. 산에 눈이 오지 않는다고 잔소리 몇 번 했더니 요즘에야 비가 내리고 산엔 눈이 내립니다. 유콘의 붉은 산하곤 전혀 다른 풍경이지요.

 

툼스톤 주립공원은 한 마디로 말해서 단풍으로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황량한 동토의 땅에 이런 별세계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가을색이 폭발하고 대자연의 가을 향연이 무르익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거기에 하늘로 치솟은 침봉들이 주는 매력은 또 어떤가. 혹자는 툼스톤 주립공원을 캐나다의 파타고니아(Patagonia)라 부른다. 이런 별세계를 탐방하려면 직접 두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2,200 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는 공원 안에 우리가 걸어 들어갈만한 트레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더구나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은 백패킹을 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백패킹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툼스톤 주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골든사이즈 트레일. 산행 기점은 뎀스터 하이웨이 기점에서 74.4km 지점에 있다. 하이웨이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들어가야 한다. 사실 이 코스는 골든사이즈 마운틴 정상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 아래 전망이 뛰어난 뷰포인트까지 오르는 왕복 3.4km의 아주 짧은 트레일이지만, 이 산길을 걸으며 만끽한 경치는 거의 환상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툼스톤 주립공원의 진수를 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립공원 내에선 꽤나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었다.  

 

트레일 초입부터 허리까지 오는 관목들이 가득했다. 하늘을 빼곤 어디를 보아도 붉고 노란 단풍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진홍색에 오렌지색, 노란색이 곁들여 이 대지에 카페트를 깔아 놓았다. 가을다운 가을을 여기 툼스톤에서 만난 것이다. 하늘도 맑고 날씨까지 좋아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환상적인 풍경에 도취되어 어떻게 걷는지도 몰랐다. 1.5km 지점에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바위로 올랐다. 여기도 경치가 좋았지만 뷰포인트는 여기서 좀 더 올라야 했다. 뷰포인트에선 노스 클론다이크(North Klondike) 강 상류에 있는 해발 2,192m의 툼스톤 산을 볼 수가 있었다. 툼스톤 연봉에선 가장 높은 산이다.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여기서 되돌아서기로 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킹스 쓰론 서미트를 올라가지 않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대타로 급히 택한 곳이 바로 이 코튼우드 트레일이었다. 킹스 쓰론 트레일에서 멀지 않아 대타로는 제격이었다. 이 트레일은 과거 모피 교역을 위해 해안 지역으로 가기 위한 루트이자, 탐험이나 광물 탐사를 위해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었다. 산행 목적으로 만든 트레일의 전체 길이가 85km로 보통 4일에서 6일은 잡아야 하는 백패킹 코스다. 캐슬린 호수에서 출발해 데자디시 호수까지 한 바퀴 돌아나온다. 트레일로 진입하는 곳과 트레일에서 나오는 곳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미리 차량 안배를 해야 한다. 중간에 있는 루이스 호수(Louise Lake) 캠핑장까지 다녀오려고 해도 왕복 30km에 이르니 적어도 이틀은 잡아야 한다.

 

굳이 이 코스를 당일로 다녀오려면 고트 크릭(Goat Creek)을 지나 5,5km 지점까지만 가는 것이 좋다. 왕복 11km 거리로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우리도 여기까지만 다녀왔다. 오른쪽으로 캐슬린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 보며 걸을 수 있고, 멀리 루이스 호수의 모습도 보인다. 사카이 호수(Sockeye Lake)로 연결되는 계곡도 볼 수 있는데, 이 사카이 호수는 코캐니 연어(Kokanee Salmon)가 회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코캐니 연어는 홍연어라 불리는 사카이 연어의 변종이다. 강 하류에 댐이 생기면서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연어들이 캐슬린 호수에서 살다가 산란을 위해 사카이 호수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변화된 환경에 새롭게 적응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코튼우드 트레일은 무척 평화로웠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산길도 푹신푹신해 너무 좋았다. 비가 내린 후라 숲에서 풍겨져 나오는 약간 비릿한 내음도 기분을 맑게 했다. 나무도 그리 크거나 굵지 않은 관목이 많았다. 그 덕분에 노랗고 붉은 색조를 많이 띄고 있었다. 붉은 이파리를 자랑하는 파이어위드(Fireweed)와 빨간 열매를 맺은 번치베리(Bunchberry)도 산색 변화에 일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 것 자체가 나에겐 하나의 축복이자 행복이었다. 단풍 외에도 우리 눈길을 끄는 것이 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숲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버섯이었다. 비늘 문양을 지닌 삿갓 형태의 버섯이 능이 버섯이라 해서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렇다고 국립공원 경내에서 버섯을 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저 눈에,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지식전당포 2014.02.28 0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 좋은 하루 되시길.

    • 보리올 2014.02.28 0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콘의 풍경에 관심이 많으신 듯 합니다. 북극권에 가까운 동토의 땅이지만 대자연이 살아있는 모습은 실로 대단한 곳이지요.

  2. 설록차 2014.03.05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한 구도의 사진 2장..밑에서 2,3번째 사진...
    이 세상 과 저 세상으로 느껴지는데요...화려한 색이 빠진 아래 사진은 신비롭기도 해요...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ㅎㅎ

 

캐나다 해안산맥 북쪽에 자리잡은 클루어니 국립공원(Kluane National Park)은 캐나다에 있는 국립공원 가운데 두 번째로 크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21,980 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태평양과 북극해에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엄청난 크기의 빙하가 생성되었고, 그 빙하가 만든 광할한 계곡이 발달하기도 했다. 우리가 가는 알섹 밸리도 그 중의 하나다. 국립공원 절반 이상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잦지는 않다. 산으로 들어가는 트레일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3~4일 일정으로 즐길만한 백패킹 코스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계곡을 흐르는 알섹 리버는 1986년에 캐나다 헤리티지 리버로 지정되기도 했다.    

 

알섹 밸리로 들어가는 산행 기점은 헤인즈 정션 북쪽 10km 지점에 있다. 왕복 58km에 이르는 이 장거리 트레일은 로웰 빙하(Lowell Glacier)를 보러 가는 백패킹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코스로 백패킹에 나선다면 보통 3~4일의 일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하루 일정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했다. 처음엔 광물을 실어나르던 옛도로를 따라 걸었다. 등반고도, 즉 엘리베이션 게인(Elevation Gain)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라 전혀 힘들지 않았다. 우리 양쪽엔 넓은 초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등산화를 벗을까 고민하다가 나무와 돌을 놓고 그 위를 밟아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었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길이라 산책나온 것처럼 여유로웠다. 여기도 노랗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버드나무와 같은 관목이 많기 때문이다. 풍경에 큰 변화는 없었다. 산길에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어 쓸쓸하기까지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한 눈에 보기에도 건너기 쉽지 않은 개울이 나타났다. 흙탕물에 수량도 많고 격류도 대단했다.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아 위아래로 다녀보았지만 위험을 무릎쓰고 건너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일행들과 협의해 여기서 돌아서기로 했다. 여기가 5km 지점쯤 되니 왕복 10km를 걸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두 쌍의 커플을 만났다. 이들은 우리가 건너지 못한 개울을 건넜던 모양이다. 젊은이 둘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고, 중년 커플은 BC 주에서 왔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4.03.02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람에 날리는 풀이 인디언 추장 머리처럼 보여서 놀래킵니다...
    찍사는 외로워~입니다그려...ㅎㅎ

    • 보리올 2014.03.02 0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기서 인디언 추장의 머리가 떠오른다니 기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보이는군요. 찍사는 늘 혼자 하는 싸움이라 원래 외로운 법입니댜.

  2. 해인 2014.03.02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인디언 추장 머리말고 라이온킹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다시 눈 비비고 똑바로 보게 만드는 사진이네요 :)

    • 보리올 2014.03.02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말대로 라이언킹이라 생각하고 보니까 그런 것도 같구나. 이거 줏대없이 인디언 추장 머리라고 하다가 라이온킹이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3. 제시카 2014.03.03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같은 사진 보곤.. 자동차에 붙일수있는 머리만 댕글댕글 움직이는 인형들이 바람에 날리는게 생각이났어요..... 전 참 특이한거같아요.. ㅎㅎㅎㅎ 처음에 빠알간 잎들 사진이 정말 이뻐요! CG 같아요 ㅎㅎㅎ

    • 보리올 2014.03.04 0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 설마 밤 새운 것은 아니겠지? 넌 저 사진이 인형으로 보인다니 정말 신기하다. 보는 사람마다 연상하는 게 전부 틀리네.

  4. 안영숙 2015.12.23 0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오랫동안 침묵,
    이제 2년이 지나서 보니 감개무량하네요,
    사진의 주인공? 이 물 건너다 오른발이 살짝 빠져 밤새 난로
    덕분에 잘 말라서..
    사실 혼자 내 힘으로 했으면 무사했을텐데 .

    Yukon의 가을풍경, 또다른 색갈이 오랫동안 가슴에
    찐하게 물 들어 있습니다, ,영원히 고맙고 ! 기회주심에.

    • 보리올 2015.12.23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월 참 빠르죠? 벌써 2년이 후딱 지나갔으니 말입니다. 유콘은 언제 다시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겨울에도 한번 가보고 싶구요.

 

재스퍼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가 새벽부터 난롯불을 피운다,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설쳐대서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모두들 일어났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수면은 충분히 취한 듯 했다. 우리도 아침 준비에 들어갔다. 아침 식사는 내가 준비한다. 설렁탕 면을 끓이면서 거기에 누룽지와 떡점을 넣어 함께 끓였다. 간단한 아침 식사로는 안성마춤이었다. 누룽지의 고소한 맛에 떡점의 질감, 따끈한 국물까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안 회장이 점심에 먹을 베이글 샌드위치도 준비했다.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고 열량도 충분해 자주 이용하는 점심 메뉴다.

 

스노슈잉에 나섰다. 먼저 오하라 호수를 한 바퀴 돌고나서 오파빈 호수(Opabin Lake)까지 갔다가 올 생각이었다. 레인저 사무실 밖에 걸어놓은 온도계부터 확인을 했다. 현재 기온은 영하 6. 눈발이 조금 날리긴 했지만 그리 춥지 않아 다행이었다. 레인저 사무실 뒤로 돌아 오하라 호수를 만났다. 석 달만에 다시 보는 것이다. 호수도, 호수를 싸고 있는 봉우리들도 모두 하얗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오하라 호수의 비취색 물빛이 사라진 탓에 가을에 보았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지만 눈의 양은 그렇게 많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예전이라면 호수 위에 최소한 1m 가 넘는 눈이 쌓였을텐데 우리가 걸은 곳은 대부분 20cm 내외였다. 여기도 밴쿠버처럼 눈이 적게 내린 것이다. 하지만 스노슈잉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호수 가장자리엔 바람에 날린 눈이 쌓여 제법 깊었다. 시계 방향으로 오하라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흩날리는 눈발에 봉우리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얼굴을 내밀곤 한다. 오하라 호수를 감싸고 있는 봉우리들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어 유감이었다. 그래도 오하라 호수의 아름다움을 모두 감추진 못했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로지도 눈을 뒤집어 쓴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호수와 로지, 산봉우리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호수를 도는 중간에 오파빈 호수를 가려 했지만 길이 분명치 않았고 어림짐작으로 눈을 치고 올랐더니 눈에 빠지는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산기슭엔 호수보단 눈이 훨씬 많이 쌓여 있었다. 여기서 눈과 실강이를 하느니 산장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맥아더 호수(Lake McArthur)를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3시간을 눈 위에서 보내고 산장으로 돌아왔다. 꺼진 난롯불도 다시 피웠다. 아침에 준비한 베이글 샌드위치를 꺼내 따뜻한 커피를 겯들여 점심을 해결했다. 실내가 훈훈해지면서 다들 식곤증이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두 양반은 침낭 속으로 들어가 낮잠을 청한다. 나만 홀로 난로 앞에 우두커니 앉아 유리창 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혼자서 즐기는 겨울철 로키 풍경에 절로 심취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깊은 산속에 외롭게 자리잡은 산장에서 이렇게 홀로 깨어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이리 좋다니 나도 자유로운 영혼에 속하나 싶었다.

 

정오가 넘어 오후 산행 준비를 서둘렀다. 아침에 비해 눈발이 거세졌다. 오하라 호수를 감싸고 있는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춥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맥아더 호수로 향했다. 예전에 걸었던 산길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어림짐작으로 가거나 스키어들이 만들어 놓은 트랙을 따라야 한다. 맥아더 호수로 가는 방향이나 지형을 익히 알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쉐퍼 호수(Shaeffer Lake)까진 잘 올라갔다.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났지만 어제보단 쉽게 올랐다. 호수를 돌아 맥아더 호수로 오르는 길로 들어섰다. 스키 트랙을 따랐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맥아더 호수 방향으로 길을 내며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곳도 쉽진 않았다. 여기도 스노슈즈가 무릎 이상 눈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루트를 바꿔 몇 번을 시도하다가 여기서 돌아서기로 했다. 쉐퍼 호수로 내려와 호수 위를 걷는데 우리 발 아래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쨍하고 두 번이나 났다. 걸음을 빨리해 호수 밖으로 빠져 나왔다.

 

다시 산장으로 돌아왔다.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이면 겨울철 하루 스노슈잉으로는 충분했다. 이른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메뉴는 간단한 짜장밥. 나만 맛있게 먹고 다른 사람들은 잘 먹지를 않는다.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따로 누룽지를 끓여 먹겠다 한다. 백패킹까지 와서 이렇게 입이 까다로우면 어쩌나 싶었다. 5시가 조금 넘어 저녁 식사를 마쳤다. 젊은이 셋은 아침에 산장을 떠났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없으니 오늘 저녁은 우리만 묵는다. 훨씬 자유롭고 여유로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7시가 되지 않아 일행들이 잠자리에 든다. 또 나만 홀로 남았다. 천장에 있는 가스등이 그리 밝지 않아 헤드랜턴을 키고 책을 읽었다. 산장엔 20여 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호젓한 시간이 나는 좋았다. 다음엔 혼자 와서 고독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은 족히 독서를 한 모양이다. 9시가 조금 넘어 나도 침낭에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4.01.24 0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 밀포드 트레일...두 군데 다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여기는 높고 깊은 산이 드물어 로키만한 그림이 없습니다...밀포드 사운드에는 가보았지만 트레킹이 뭔지 모르던 때여서 그냥 입구에서 돌아섰어요...걷고 또 걷고하면 언젠가 가는 일이 있지않겠어요...거리를 0.5km 늘렸더니 에그~또 눈에 불청객이 찾아왔어요.ㅠㅠ

  2. 보리올 2014.01.25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포드도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 소문이 나있으니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가까이 계실 때 한 번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그런 목표를 세워 놓으면 아무래도 더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겠습니까?

  3. 권선호 2014.02.13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간 운전이라.. 대단하네..
    그리고 무거운 배낭 메고 11km 걸어올라간다니 경련이 날 만도 하네..

    눈구름에 가린 Mt.Hubber가 반갑고 새롭네..
    자네가 말하는 Opabin, Schaffer, McArthur.. 아직도 기억에 생생..

    • 보리올 2014.02.13 1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후버 산의 이름을 기억하는구먼. 우리가 갔던 호수들 이름도 줄줄이 꿰고 있고. 기억력이 대단하우. 아쉽게도 오파빈, 맥아더 호수는 못가고 쉐퍼 호수만 둘러봤지.

    • 권선호 2014.02.19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산과 호수들을 어찌 잊겠는가??
      아직도 생생혀..
      Mt.Hubber는 마치 백제 금동대향로 표면에 조각된 것 같은 느낌였네..

    • 보리올 2014.02.19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네같이 산을 진정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걸세. 캐나다 로키를 다녀간 사람 중에 자네의 감동이 가장 큰 것 같구만. 진심으로 고마우이.

  4. 설록차 2015.05.24 0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장 지붕 위에 쌓인 눈 두께가 엄청나네요...위험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