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운하만 보고 갈 수는 없는 일. 관광객에게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uis)이나 국립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번에는 암스테르담을 유명하게 만든 홍등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소위 환락가라 불리는 곳을 대낮부터 혼자서 돌아다닌 것이다. 사실 홍등가는 밤에 구경해야 제격인데 이 날은 대낮에 갔기 때문에 사람도 없었고 문을 닫은 곳도 많아 좀 쓸쓸해 보였다. 밤에 홍등가를 구경한 적이 있어 그 분위기가 그리 궁금하진 않았다.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매춘으로 꽤 유명하다. 여기선 매춘이나 낮은 수위의 마약은 불법이 아니다. 이런 배경엔 독일 함부르크와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한 역사적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도심 한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잡은 홍등가로 들어서니 섹스용품을 파는 가게, 포르노 쇼를 하는 곳, 빨간 커튼이 드리워진 매춘부 방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하지만 한 낮이라 그런지 호객하는 사람도, 유리창 너머로 윙크하는 아가씨도 없었다. 이곳도 불경기를 겪고 있나 싶었다. 암스테르담의 매춘부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세금을 납부하며 연금이나 휴가 등의 혜택도 받는다. 일종의 자영업자로 보면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많이 사는 나라라 개인의 의사, 자유를 존중하는 풍토 덕분일 것이다.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도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어느 누구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홍등가가 일종의 컨텐츠로 인식되어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아이들을 통에 싣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이것도 자전거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조그만 건물의 외관 장식도 획일적이지 않아 보기가 좋았다.

 

 

운하 옆에 있는 어느 카페의 한가로운 풍경

 

술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권총 모양의 데킬라 술병을 발견했다.

 

 

네덜란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치즈. 암스테르담에는 곳곳에 치즈 가게가 성업 중이다.

 

 

 

길거리에 벼룩시장이 열려 잠시 눈요기를 했다.

 

하시 마리화나 헴프 박물관. 마약에 관심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홍등가 거리. 밤 풍경이 제격인데 대낮이라 좀 쓸쓸함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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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부에 자리잡은 알프스 산맥은 동으론 슬로베니아, 서쪽으론 프랑스에 이르는 광대한 산군이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가 있다. 현지에선 이탈리아 알프스가 알프스 산맥에 속한 북부 산악 지역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북서쪽의 아오스타 밸리(Aosta Valley)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남티롤 지방에 속하는 돌로미티는 그냥 돌로미티란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에 우리는 돌로미테라 부르곤 했는데, 이탈리아에 속하는 땅인만큼 이탈리아 발음에 맞춰서 돌로미티라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돌로미티를 영화에서 먼저 접했을지도 모른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산악구조대원으로 나오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클리프행어를 보면서도 로케이션이 돌로미티인 줄은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돌로미티 트레킹은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도는 당일치기 코스부터 시작을 했다. 공식적으론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라 불리는 곳인데, 트레치메란 세 개의 거대한 바위산을 일컫는 말이고 라바레도는 그냥 지명이다. 돌로미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돌로미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라 볼 수 있다. 작은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피콜로(해발 2,856m)와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치마 그란데(3,003m), 동쪽에 있는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오베스트(2,972m)가 나란히 붙어있다. 우리 식으로 삼형제봉이라 이름을 붙이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가 첫날 걸은 지역은 모두 트레치메 자연공원(Parco natuale Tre Cime)에 속했다.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까진 차로 오를 수 있었다. 산장 앞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며 울퉁불퉁한 산세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돌로미티란 명성이 명불허전이란 것을 첫날부터 확인시켜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날씨 또한 쾌청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홀로 서있는 조그만 교회 앞에는 옛날 군복 차림의 노병들이 모여 산악 전쟁에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묵념을 올렸다. 두 아이를 데리고 홀로 걷는 젊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한 아이 손을 잡고 또 한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라 절로 눈길이 갔다. 엄마 손을 잡았던 네댓 살 여자 아이가 갑자기 3m 높이의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여자 아이의 볼더링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같으면 위험하다고 뜯어말릴 판인데 이 엄마는 아이에게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옆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날망에 오르니 로카텔리 산장(Rif. Locatelli)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으로 내려서며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럴 때면 늘 집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환상적인 풍경을 함께 즐기지 못 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장 앞에는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거기엔 산장을 세운 제프 이너코플러(Sepp Innerkopler)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산악부대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전쟁 중에 사망했다. 이 주변엔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싸운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아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옴으로써 첫날 트레킹을 마쳤다. 해질녘에 바위가 붉게 물드는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은 좀 미련으로 남았다.

 

 

첫날 트레킹을 시작한 아우론조 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산 속에 외롭게 교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마침 그곳에서 산악 전쟁에서 죽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네댓 살쯤 되었을 어린 꼬마가 볼더링 실력을 뽐내며 조그만 바위를 오르고 있다.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트레치메의 위용에 절로 가슴이 떨렸다.

 

 

 

로카텔리 산장에서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 산장 앞에는 이너코플러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트레치메 뒤쪽을 돌다가 의외로 많은 에델바이스를 발견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며 돌로미티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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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달 2019.06.19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글 잘읽었습니다...
    산행기가 좋네요~

 

유럽에 있는 도시 중에 포르투는 개발의 손길이 비껴가 좀 낙후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옛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고 오랜 전통에 빛나는 건축물들로 인해 오히려 도심 풍경이 빛을 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우루 강을 굽어보는 언덕배기에 촘촘히 자리잡은 건물에는 대성당을 비롯한 크고 작은 성당들과 수도원, 성곽 등이 있고 그 속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도 섞여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13세기에서 1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수 세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양식을 머금고 있다. 높은 전망대에 서서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고풍스런 건물들을 한 눈에 바라보는 것도 마냥 좋았고, 좁은 골목길로 내려서 위로 올려다보는 옛 건물의 자태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포르투 역사지구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도우루 강을 따라 걷다가 포르투 와인 박물관(Museu do Vinho do Porto)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포르투는 전통적으로 와인이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맛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포르투에서 만드는 와인을 포트 와인(Port Wine)이라 부르는데, 혹자는 주정 와인이라고도 한다. 100년 전쟁으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와인 수입이 어려워진 영국은 그 대안으로 포르투에서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와인 운송 과정에서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효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오크통에 넣어 그 안에 5~10%의 브랜디를 섞었다고 한다. 그래서 포트 와인은 알코홀 도수가 높은 달달한 포도주가 되었고 가격도 다른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포르투의 도심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포르투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올랐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포르투의 도심 풍경은 환상적

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고풍스런 건물과 정감이 넘치는 골목이 살아있는 도시는 이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거닐며 눈앞에 나타나는 삶의 흔적을 둘러 보았다.

 

도심을 달리던 사람 몇 명이서 만드는 이색적인 풍경도 보기 좋았다.

 

 

새로운 세관 건물로 지어진 알판데가 노바(Alfandega Nova)에서는 다음 날열릴 마라톤 경기 준비로 바빴다.

 

 

 

 

 

 

2004년에 개관한 포르투 와인박물관은 포트 와인의 역사를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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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얼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옛 건물과 현대적 고층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다. 특히, 올드 몬트리얼에 있는 노틀담 바실리카(Notre-Dame Bacilica)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69m 타워 두 개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리 인상적은 아니었지만 그 내부는 완전히 달랐다. 유럽 도시에 있는 성당을 꽤 다녀보았다고 자부를 하는데, 이렇게 화려한 성당은 사실 본 적이 없다. 1672년에 지어진 성당은 1824년부터 다시 짓기 시작해 완공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고 한다. 제단과 설교단, 파이프 오르간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실내의 화려한 장식과 색상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지하철을 이용해 또 다른 성당을 보러 갔다. 1894년에 완공되었다는 마리-레인느--몽드 성당(Cathedrale Marie-Reine-du-Monde)을 찾아간 것이다. 돔 형태의 웅장한 외관이 눈에 들어왔지만 실내는 노틀담 바실리카에 비해선 소박했다. 성당을 나오니 길 건너 광장에는 캐나다 연방 수상을 지낸 로리에(Wilfrid Laurier)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다시 지하철을 탔다. 몬트리얼 도심을 구경할 생각이라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8불을 내고 하루권을 끊으면 24시간 마음대로 탈 수가 있었다. 지하철 역사도 문화공간으로 꾸며놓은 곳이 많아 이들의 문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역마다 독특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어 지하철 역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사진) 북미에서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성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노틀담 바실리카 성당.

성당이 완공된 이후 약 50년간 북미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사진) 여기 세워졌던 카톨릭 성당이 1852년 화재로 소실되자 카톨릭의 존엄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본떠 마리-레인느--몽드 성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몬트리얼은 대중교통 수단으로 지하철을 잘 갖추고 있었다.

현재는 네 개 노선에 68개의 역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역은 다른 형태의 조형물이나 그림으로 치장하고 있어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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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유럽으로 출장을 떠난다는 설레임을 안고 다시 찾은 브뤼셀. 마지막으로 유럽을 다녀온 지가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옛날 여권을 꺼내 입국 스탬프를 확인해 보았더니 마지막 스탬프가 찍힌 것이 2003 3월이었다. 정확히 8년이란 세월을 훌쩍 건너 뛰고 다시 유럽을 찾게 된 것이다. 1988년부터 만 5년간 독일에서 살았던 나는 그 후에도 자주 출장을 갔었기 때문에 유럽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내심 궁금하기는 했다.

 

2011 3 13일 브뤼셀에 도착해 3 17일 그곳을 떠나 독일로 갔다. 핼리팩스에서 몬트리얼로, 몬트리얼에서 다시 미국 뉴저지 뉴왁(Newark)으로, 그리곤 뉴왁에서 브뤼셀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핼리팩스 상공을 날고 있다는 운항 정보가 단말기에 나타났다. 이렇게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돌리고 제자리로 왔는데 그래도 항공권 가격은 훨씬 싸지니 이 무슨 요지경 세상인가 싶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런던 상공을 날고 있다고 알린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햇살이 구름 위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래로는 구름 바다가 펼쳐져 런던의 흔적도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브뤼셀 공항은 예상외로 사람들로 붐볐다. 유럽 연합의 수도라서 그런지, 아니면 어떤 행사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문객이 많아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잔뜩 구름을 머금은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버스라는 생각에 버스를 택했다. 회사 경비 몇 푼 아꼈다는 자부심도 좀 들었고. 난 어느 도시에 가던지 버스만 제대로 탈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디든, 어떤 종류의 여행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버스가 내겐 외지에서의 적응력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라고나 할까.

 

 

버스에 오르며 기사에게 다운타운으로 가냐고 확인하고 탔는데도 도심과는 좀 떨어진 지하철 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종점이라니 별 도리가 없었다. 공항에서 구한 지도에서 현위치를 확인하곤 가방을 끌고 시내로 걸었다. 한 시간쯤 걸어 호텔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 덕분에 그랑 플라스(Grand Place)도 구경하며 지나쳤고 도심의 윤곽도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 유럽 여행은 회사 업무와 관련한 전시회가 브뤼셀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전시회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을 이용해 브뤼셀 도심을 걸어볼 기회가 있었다. 브뤼셀도 사실 초행길은 아니었다. 독일에서 근무할 때 두 번인가, 세 번을 여행삼아 다녀간 적이 있다. 그 때도 그랑 플라스 광장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오줌싸개 동상의 초라함에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 외에 엑스포를 기념해 세웠다는 분자 형태의 대형 조형물, 아토미엄(Atomium)을 보았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래도 전에 왔었던 곳이라고 훨씬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내가 묵은 곳은 베드포드(Bedford) 호텔이었는데 이름만 별 네 개 호텔이지, 시설이나 서비스는 너무 형편없었다. 우리는 하루에 €150 유로로 예약을 했지만 방에는 하루 숙박비가 €260 유로라 버젓이 적혀 있었다. 솔직히 시설은 캐나다 모텔보다도 훨씬 못해 보였다. 외국에서 단체 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이 방에서 무슨 놀이를 하는지 괴성을 지르며 시끄럽게 굴었다. 인터넷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사용이 쉽지 않았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방에선 쾨쾨한 냄새가 어찌나 진동을 하던지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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