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Croatia)의 수도 자그레브(Zagreb)로 건너왔다. 크로아티아는 EU 회원국이지만 쉥겐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까닭에 따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화폐도 유로가 아닌 쿠나(kuna)를 쓴다.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자 바로 톨게이트가 나와 통행료를 받았다. 미처 쿠나를 준비하지 못해 2유로를 줬더니 징수원이 잔돈이 없다는 핑계로 1유로를 꿀꺽했다.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cic Square) 인근에 숙소를 잡고 광장으로 나갔다. 인구 82만 명의 자그레브는 본래 크지도 않지만 도심에만 머물러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옐라치치 광장이 자그레브에선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옐라치치 동상이 광장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장 한 켠엔 돌라치(Dolac) 노천시장이 들어서 꽃과 과일을 파는 노점들을 둘러보았다. 광장 주변은 자그레브 중심부답게 사람들로 꽤나 붐볐다.

 

옐라치치 광장 오른쪽으로 조금 오르면 주교좌 성당인 자그레브 대성당이 나온다. 성 스테판 성당으로도 불린다. 가장 고액권인 1,000쿠나 지폐 뒷면에 등장한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은 못 했다. 108m 높이의 고딕 양식 첨탑을 밑에서 올려다봤더니 그 위엄이 대단했다. 첨탑 하나는 수리 중이라 온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음에도 말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13세기에 그렸다는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리 화려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트칼치체바(Tkalčićeva) 거리를 찾았다. 카페 거리라 불리는 곳으로 레스토랑이나 펍, 카페가 즐비하다. 그 길이가 500m쯤 되는데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1994년부터 맥주를 직접 생산해 서빙한다는 피브니카 말리 메도(Pivnica Mali Medo)란 식당을 들어가 시원한 맥주로 갈증부터 풀었다.

 

 

 

 

 

자그레브 중심부에 해당하는 반 옐라치치 광장은 유럽 어느 도시의 광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자그레브 시내를 운행하는 트램은 대부분 반 옐라치치 광장을 지난다.

 

광장 한 켠에서 열리는 돌라치 시장은 규모는 작았지만 자그레브가 자랑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였다.

 

 

옐라치치 광장 오른쪽으로 돌아 대성당이 있는 캅톨 언덕으로 걸어 올랐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보여주는 자그레브 대성당은 시내 어디서나 눈에 들어오는 두 개의 첨탑이 단연 압권이었다.

 

 

 

대성당 내부는 주교좌 성당임에도 간결함이 돋보이는 장식과 조각, 그림이 비치되어 있었다.

 

 

 

트칼치체바 거리는 먹고 마시며 즐기기 좋은 곳이라 밤낮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카페 거리에 있는 피브니카 말리 메도란 식당은 맥주를 직접 생산하는 맥주공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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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싹세싹 2019.12.30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자그레브 성당 규모가 엄청 나네요~광장의 모습이 왠지 정감이 가네요~작은 시장도 열린다고 하니 구경하기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 보리올 2019.12.30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관광이나 쇼핑을 즐기며 하루를 보내도 좋을 것 같더군요. 그 주변에 모든 것이 결집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대성당도 가깝고요.

 

메사르스키 다리(Mesarski most)에 올랐다. 2010년에 새로 놓은 다리라 일부는 반투명 유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다리 양쪽 난간엔 연인들이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며 채운 자물쇠가 수도 없이 걸려 있었다. 사랑의 도시라는 류블랴나에서 이 많은 사랑의 징표를 만나다니 이것도 꽤나 의미있어 보였다. 속으론 여기까지 와서 자물쇠로 사랑을 약속한 세계 각지의 연인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로 남아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한 블록을 지나 드래곤 브리지(Zmajski most)에 닿았다. 1901년에 건설된 다리 네 귀퉁이에는 청동으로 만든 용 네 마리가 다리를 수호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중국 전설에나 나오는 용을 유럽에서 만나다니 좀 의외였다. 알고 보니 용은 류블라냐의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한다.  

 

보통은 푸니쿨라를 타고 류블랴나 성(Ljubljanski grad)으로 올라가는데, 우리는 호기롭게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길도 편하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 쉽게 올랐다.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성에 올라 바라본 류블랴나의 조망은 훌륭했다. 도심에 붉은 지붕을 쓴 건축물이 많아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게 보였다. 류블랴나 성은 류블랴나의 랜드마크로 단연 첫손에 꼽을만했다. 처음 성을 지은 것은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존하는 건물은 1511년 대지진 이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16세기에 지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도 성 외벽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박물관이 있다는 성 안으론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가 올라온 길 반대편에 있는 골목길로 내려서 도심으로 돌아왔다.

 

 

 

 

 

다리 난간에 수많은 사랑의 자물쇠가 걸려있던 메사르스키 다리도 내겐 인상적이었다.

 

 

네 마리 용이 네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드래곤 브리지

 

류블랴나 성으로 오르는 산책로 초입에 세워진 안내 지도

 

 

 

류블랴나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통하는 류블랴나 성은 높지 않은 언덕배기 위에 세워져 있다.

 

 

 

 

류블랴나 성은 고풍스러운 도심을 조망하기에 좋은 전망대 역할을 했다.

 

 

 

 

 

반대편에 있는 길로 하산하면서 아름다운 골목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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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싹세싹 2019.12.14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류블랴나성 화려하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이 좋네요^^

  2. 해인 2020.01.07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5분만 투자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뷰를 감상할수있군요! 😍 산책도 하고 뷰도 감상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네요 😎

    • 보리올 2020.01.07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행니 댓글 쓰는 재주가 갈수록 느는 것 같구나. 푸니쿨라도 그리 비싸진 않지만 그래도 난 이 짧은 산책길이 너무 좋더라. 시간 되면 성 안에 있는 박물관도 들어가 보거라.

 

 

암스테르담에서 운하만 보고 갈 수는 없는 일. 관광객에게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uis)이나 국립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번에는 암스테르담을 유명하게 만든 홍등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소위 환락가라 불리는 곳을 대낮부터 혼자서 돌아다닌 것이다. 사실 홍등가는 밤에 구경해야 제격인데 이 날은 대낮에 갔기 때문에 사람도 없었고 문을 닫은 곳도 많아 좀 쓸쓸해 보였다. 밤에 홍등가를 구경한 적이 있어 그 분위기가 그리 궁금하진 않았다.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매춘으로 꽤 유명하다. 여기선 매춘이나 낮은 수위의 마약은 불법이 아니다. 이런 배경엔 독일 함부르크와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한 역사적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도심 한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잡은 홍등가로 들어서니 섹스용품을 파는 가게, 포르노 쇼를 하는 곳, 빨간 커튼이 드리워진 매춘부 방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하지만 한 낮이라 그런지 호객하는 사람도, 유리창 너머로 윙크하는 아가씨도 없었다. 이곳도 불경기를 겪고 있나 싶었다. 암스테르담의 매춘부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세금을 납부하며 연금이나 휴가 등의 혜택도 받는다. 일종의 자영업자로 보면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많이 사는 나라라 개인의 의사, 자유를 존중하는 풍토 덕분일 것이다.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도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어느 누구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홍등가가 일종의 컨텐츠로 인식되어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아이들을 통에 싣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이것도 자전거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조그만 건물의 외관 장식도 획일적이지 않아 보기가 좋았다.

 

 

운하 옆에 있는 어느 카페의 한가로운 풍경

 

술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권총 모양의 데킬라 술병을 발견했다.

 

 

네덜란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치즈. 암스테르담에는 곳곳에 치즈 가게가 성업 중이다.

 

 

 

길거리에 벼룩시장이 열려 잠시 눈요기를 했다.

 

하시 마리화나 헴프 박물관. 마약에 관심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홍등가 거리. 밤 풍경이 제격인데 대낮이라 좀 쓸쓸함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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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부에 자리잡은 알프스 산맥은 동으론 슬로베니아, 서쪽으론 프랑스에 이르는 광대한 산군이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가 있다. 현지에선 이탈리아 알프스가 알프스 산맥에 속한 북부 산악 지역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북서쪽의 아오스타 밸리(Aosta Valley)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남티롤 지방에 속하는 돌로미티는 그냥 돌로미티란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에 우리는 돌로미테라 부르곤 했는데, 이탈리아에 속하는 땅인만큼 이탈리아 발음에 맞춰서 돌로미티라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돌로미티를 영화에서 먼저 접했을지도 모른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산악구조대원으로 나오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클리프행어를 보면서도 로케이션이 돌로미티인 줄은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돌로미티 트레킹은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도는 당일치기 코스부터 시작을 했다. 공식적으론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라 불리는 곳인데, 트레치메란 세 개의 거대한 바위산을 일컫는 말이고 라바레도는 그냥 지명이다. 돌로미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돌로미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라 볼 수 있다. 작은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피콜로(해발 2,856m)와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치마 그란데(3,003m), 동쪽에 있는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오베스트(2,972m)가 나란히 붙어있다. 우리 식으로 삼형제봉이라 이름을 붙이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가 첫날 걸은 지역은 모두 트레치메 자연공원(Parco natuale Tre Cime)에 속했다.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까진 차로 오를 수 있었다. 산장 앞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며 울퉁불퉁한 산세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돌로미티란 명성이 명불허전이란 것을 첫날부터 확인시켜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날씨 또한 쾌청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홀로 서있는 조그만 교회 앞에는 옛날 군복 차림의 노병들이 모여 산악 전쟁에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묵념을 올렸다. 두 아이를 데리고 홀로 걷는 젊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한 아이 손을 잡고 또 한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라 절로 눈길이 갔다. 엄마 손을 잡았던 네댓 살 여자 아이가 갑자기 3m 높이의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여자 아이의 볼더링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같으면 위험하다고 뜯어말릴 판인데 이 엄마는 아이에게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옆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날망에 오르니 로카텔리 산장(Rif. Locatelli)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으로 내려서며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럴 때면 늘 집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환상적인 풍경을 함께 즐기지 못 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장 앞에는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거기엔 산장을 세운 제프 이너코플러(Sepp Innerkopler)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산악부대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전쟁 중에 사망했다. 이 주변엔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싸운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아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옴으로써 첫날 트레킹을 마쳤다. 해질녘에 바위가 붉게 물드는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은 좀 미련으로 남았다.

 

 

첫날 트레킹을 시작한 아우론조 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산 속에 외롭게 교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마침 그곳에서 산악 전쟁에서 죽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네댓 살쯤 되었을 어린 꼬마가 볼더링 실력을 뽐내며 조그만 바위를 오르고 있다.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트레치메의 위용에 절로 가슴이 떨렸다.

 

 

 

로카텔리 산장에서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 산장 앞에는 이너코플러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트레치메 뒤쪽을 돌다가 의외로 많은 에델바이스를 발견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며 돌로미티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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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달 2019.06.19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글 잘읽었습니다...
    산행기가 좋네요~

 

유럽에 있는 도시 중에 포르투는 개발의 손길이 비껴가 좀 낙후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옛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고 오랜 전통에 빛나는 건축물들로 인해 오히려 도심 풍경이 빛을 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우루 강을 굽어보는 언덕배기에 촘촘히 자리잡은 건물에는 대성당을 비롯한 크고 작은 성당들과 수도원, 성곽 등이 있고 그 속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도 섞여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13세기에서 1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수 세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양식을 머금고 있다. 높은 전망대에 서서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고풍스런 건물들을 한 눈에 바라보는 것도 마냥 좋았고, 좁은 골목길로 내려서 위로 올려다보는 옛 건물의 자태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포르투 역사지구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도우루 강을 따라 걷다가 포르투 와인 박물관(Museu do Vinho do Porto)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포르투는 전통적으로 와인이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맛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포르투에서 만드는 와인을 포트 와인(Port Wine)이라 부르는데, 혹자는 주정 와인이라고도 한다. 100년 전쟁으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와인 수입이 어려워진 영국은 그 대안으로 포르투에서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와인 운송 과정에서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효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오크통에 넣어 그 안에 5~10%의 브랜디를 섞었다고 한다. 그래서 포트 와인은 알코홀 도수가 높은 달달한 포도주가 되었고 가격도 다른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포르투의 도심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포르투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올랐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포르투의 도심 풍경은 환상적

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고풍스런 건물과 정감이 넘치는 골목이 살아있는 도시는 이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거닐며 눈앞에 나타나는 삶의 흔적을 둘러 보았다.

 

도심을 달리던 사람 몇 명이서 만드는 이색적인 풍경도 보기 좋았다.

 

 

새로운 세관 건물로 지어진 알판데가 노바(Alfandega Nova)에서는 다음 날열릴 마라톤 경기 준비로 바빴다.

 

 

 

 

 

 

2004년에 개관한 포르투 와인박물관은 포트 와인의 역사를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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