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다 - 한국'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3.12.23 [시장 순례 ①] 서울 광장시장 (4)
  2. 2013.12.22 군산은 매력이 넘친다 (2)
  3. 2013.12.21 황남빵의 유혹에 경주를 가다 (6)
  4. 2013.12.20 논산에서 자장면과 절밥을 먹다 (8)
  5. 2013.12.07 부산 유엔기념공원 (2)


 

캐나다 동부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낸 뒤 모든 짐을 훌훌 벗고 고국 방문길에 올랐다. 연세가 아흔을 넘긴 모친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여기저기 인사할 곳도 꽤 많았다. 2주간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주마간산으로 지방도 다녀왔다. 이번 방문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는 곳마다 재래시장을 들르고 싶었다. 재래시장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면서도,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의외로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고나 할까. 고향의 정취를 맛보는 기분이 들어 난 재래시장을 좋아하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 또한 즐긴다.

   

캐나다에도 이와 비슷한 재래시장이 있기는 하다. 우리의 장터처럼 도심의 빈 공간에서 주말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열린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나오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집에서 구운 빵을 가지고 나와 팔기도 한다. 손수 만든 공예품을 진열해놓고 파는 예술가도 있다. 여기라고 사람사는 냄새가 빠질 일은 없지만, 주말에만 열린다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재래시장처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상설시장이 그립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재래시장엔 싸면서도 푸짐한 먹거리와 막걸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종로5가역 근처에 있는 광장시장이었다. 1905년에 한성부 허가를 받아 시장이 탄생했다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이란 TV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 수 있었고 다음 고국 방문길에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광장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닭 한 마리골목은 꽤 여러 번 갔었는데 여기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결론적으로 광장시장에 있는 먹자 골목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그 안을 가득 메운 엄청난 인파에 또 한 번 놀랐다. 시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너무나 복잡했다. 뒤에서 미는 사람들 때문에 저절로 앞으로 나가는 형국이었다. 인산인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TV에서 방영한 효과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렇게 사람이 많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대박났다는 표현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

    

열십자 형태의 시장 안을 음식점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음식점이 그리 많음에도 월급쟁이들이 퇴근하는 저녁 무렵에는 자리잡기도 힘이 들었다. 모든 종류의 길거리 음식이 여기 집결한 것 같았다. 마약김밥과 육회, 그리고 직접 맷돌로 녹두를 갈아 만든 빈대떡이 광장시장을 대표하는 메뉴라 했지만, 그 외에도 고를 수 있는 메뉴가 무척 많았다. 순대와 떡볶이, 어묵, 칼국수, 매운탕, 모듬전, 팥죽, 족발 등등. 그 모두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몇몇 가게는 유명세를 타는지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무척 길었다. 이웃 간에 맛은 비슷할텐데 유명세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몇 가지 음식으로 배를 채웠더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빨리 일어나라는 눈치를 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흡족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12.26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집' 보다 '내가 가본 집'이나 '먹어본 집'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젠 맛집 포스팅이 광고로 변절해서 믿을게 없다네요...참 우리 나라 사람들 영리하지요...잔머리 굴리는데는 세계 1,2위를 다투지 않을까요...

  2. 보리올 2013.12.26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TV나 파워 블로거의 맛집 소개를 그리 믿는 편은 아닙니다. 거기에 일반인들도 맛있다는 칭찬 대열에 동참을 하니 맛집 정보가 넘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TV에 나오지 않은 집'이란 광고가 각광을 받을 정도가 되었답니다. 저도 '가본 집'이란 표현 정도로 그쳐야 한다고 봅니다.

  3. Justin 2013.12.29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간접적으로 아버지 블로그를 통해서 재래 시장 체험을 해봐야겠어요. 광장시장은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곳인데 이번 기회에 꼭 가볼겁니다! 너무너무 기대되네요.

  4. 보리올 2013.12.29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도심에 있는 커다란 몰의 푸드 코트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일게다. 난 이런 재래시장이 훨씬 좋더라. 이번에 가서 그런 느낌을 많이 느끼고 오길 바란다.

 

난 군산이란 도시가 좋다. 도시 규모도 적당하고 조금은 퇴락한 듯한 도시 모습에서 정겨움을 많이 느낀다. 그 오래된 일본식 가옥을 깡그리 때려부수지 않고 조금씩 고쳐 쓰고 있다는 것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우리 나라가 주권을 잃고 일본에 강점당한 것은 분명 수치스런 일이지만, 일본 통치도 우리 나라 역사의 일부분이다. 옛 일본의 잔재를 없앤다 해서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통해 일본의 만행과 수탈을 알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서울에 사는 후배들이 저녁에 차를 가지고 내려온다 해서 나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군산으로 먼저 내려갔다. 시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발길 닿는대로 군산의 명소 몇 군데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내항 근처에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과 근대문화유산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딱히 무엇을 보겠다 정해 놓진 않았지만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옛 군산세관부터 찾아간다. 이 근방이 과거 군산의 중심지였고, 일제 시대에는 미곡 반출로 분주했던 곳이었다. 붉은 색 벽돌이 세관 건물의 기품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길거리에서도 일본식 가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건물도 적당히 낡아 오히려 보기가 좋았다. 잘만 보존하면 이런 일본식 가옥도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거기엔 역사가 살아 숨쉬지 않는가. 시멘트와 철골로 만든 고층건물보다 효율이나 편의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도심의 정취야 이게 백번 낫지 않은가 말이다.

 

 

 

 

 

 

 

일본식 전통 가옥으로 유명한 히로쓰 가옥을 찾아갔다. 목조 2층 건물인 이 집의 정식 명칭은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라 하던데, 우린 그냥 일본 가옥이라 불렀다. 이 집 주인이었던 히로쓰는 포목상을 해서 큰 돈을 번 사람이었다고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 정원부터 둘러 보았다.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 놓았다. 자연을 자기 집안에 들여 놓은 느낌이랄까. 사람 손이 많이 들어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실내도 들어가 보았다. 방바닥은 다다미가 깔려있고 문은 대부분 미닫이 문이었다.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는 것도 우리 방식과는 달랐다. ‘장군의 아들타짜란 영화를 여기서 찍었다 해서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후배들 두 부부가 차를 가지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두 번인가 갔었던 군산횟집이 떠올랐다. 이 집도 군산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군산항 바닷가에 위치한 8층짜리 건물로 모든 층을 횟집으로 쓰고 있었다. 1층은 수족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 컸다. 이 식당은 1982년 개점한 이래 부지기수로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모양이다. 종업원의 의견을 물어 광어회를 시켰다.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처럼 군산 바닷가에서 맛보는 싱싱한 생선회와 소주 한 잔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12.25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거리가 영화 세트장같이 보이네요...부산 군산 여수 이런 항구도시에 일본식 집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짧은 기간동안 많이도 지었더라구요...보기에는 정취가 있지만 살기에는 불편한 구조였어요....석등이 있는 정원이 옛집을 생각나게 합니다...

  2. 보리올 2013.12.25 0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식 가옥이 우리 생활 양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래도 콘크리트 아파트보다는 옛 정취를 많이 풍겨 제가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지요.

 

누굴 만나러 경주에 다녀온다는 동생을 따라 나섰다. 당일에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이 분명함으로 경주를 둘러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천년고도 경주를 이렇게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이런 여행도 보는 관점에 따라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무작정 따라 나선 배경에는 동생이 언급한 황남빵이 많은 작용을 했다. 예전에 부산을 출장가는 경우 김해공항에서 경주빵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주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경주빵의 원조라는 황남빵을 먹어보자. 황남빵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앞뒤 가리지 않고 동생 차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점심 시간을 맞았다. 난 본래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급하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벗어나 현지 식당을 찾곤 했다. 마침 차가 영동을 지나고 있어 동생에게 황간 인터체인지로 나가자고 했다. 거기엔 예전에 산행을 다니면서 자주 들렀던 올뱅이 국밥집이 있었다. 이 지역에선 올갱이를 올뱅이라 부른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바로 식당이 보이는데, 그래서 식당 이름을 인터식당이라 붙인 모양이었다. 촌스러운 영문 이름이었지만 난 정이 느껴져 좋았다. 된장을 푼 국물에 부추와 올갱이를 넣어 팔팔 끓인 국밥이 시원했다. 예전에 먹었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경주에 도착해 황남빵을 만드는 가게부터 들렀다.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니 놀랍기만 했다. 우리도 순서를 기다려 몇 박스를 샀다. 어머니 드릴 것도 챙겼다. 1939년부터 만들어온 빵이라니 그 하나하나에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얇은 껍질 안에 듬뿍 넣은 팥앙금이 역시 일품이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만든 빵이라 더 맛있었나 보다. 우리가 아는 경주빵은 황남빵을 만들던 기술자가 독립해서 만들었다 한다. 그러니 원조를 따지면 황남빵이 먼저인 셈이다.

 

 

 

 

 

  

오랜 만에 보는 보문호는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좋았다. 늘 사람들로 붐비던 곳인데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호수 위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호숫가를 좀 걸었다. 이제 다시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경주에 있는 한정식집 옛정이란 곳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금액에 반찬 가짓수가 엄청 많이 나왔다. 조금씩 맛을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한국의 인심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상차림이었지만 남은 음식은 모두 버릴텐데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는 식량이 부족해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던데 우리는 음식을 버려야 하다니낭비란 생각이 들어 공연히 한정식을 찾았구나 후회를 했다.

 

 

 

 

 

   

동생은 원주로 바로 간다고 해서 상경은 KTX를 이용하기로 했다. 경주역까지 태워주면서 보문단지에 있는 현대호텔에서 샀다며 동생이 다보빵을 건넨다. 이 빵은 황남빵을 겨냥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견과류와 고구마, 무화과를 넣어 두뇌 영양에 좋다고 자랑을 한다. 소는 팥대신 강낭콩을 썼다. 그 맛이 궁금해 그냥 가지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열차 안에서 하나둘 꺼내 먹다가 보니 박스에 들은 스무 개를 모두 먹어치웠다. 경주 황남빵과 다보빵으로 배를 채운 특이한 날이었지만, 동시에 식탐을 어찌 하지 못한 하루이기도 했다. 하여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우라마스터 2013.12.21 1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남빵 먹고 싶어요.

  2. 보리올 2013.12.21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죠? 글과 사진을 보고 식욕을 돋우면 짜증나는데 말입니다. 빨리 경주를 다녀오시던가, 시간이 없으시면 친구를 대신 보내세요. 택배도 되나 모르겠네요.

  3. 설록차 2013.12.22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탐이 없어진 나이가 된 것이 다행일 줄이야~~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ㅠㅠㅠ

  4. 보리올 2013.12.22 0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탐을 버리셨어요? 전 아직도 그 앞에서 절절 매고 있는데... 식이요법 한다고 얼마를 보냈더니 식탐을 버리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5. Justin 2013.12.22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두대간 종주 구간할때 그 지방을 지나치면 가끔 먹었던 올갱이 국밥이 너무너무 그리워요.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게다가 황남빵은 맛도 맛이지만 저에겐 남다른 추억이 담긴 빵이기도 하지요!

  6. 보리올 2013.12.22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식당은 너랑 백두대간 종주할 때 갔던 곳이야.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이 없지. 언제 부자가 함께 가서 올뱅이국밥 한 그릇 하지?

 

 

히말라야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다녀온 분들과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실상은 논산에 계시는 지현 스님께서 우리를 모두 논산으로 초대한 것이다. 저녁은 사찰 음식으로 준비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겠다 했다. 하루를 함께 보낼 프로그램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시내버스를 이용해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가서는 논산행 기차를 탔다. 명색이 무궁화호였지만 예전의 완행 열차처럼 정차하는 역이 많았다. 비둘기호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세상은 점점 살기 편해지는데 반해 낭만과 감동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골 풍경은 여전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누런 벌판만 쓸쓸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여긴 내가 그리던 고국의 산하가 아닌가.

 

 

트레킹을 함께 했던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를 타고 상월면에 있는 자장면 집으로 향했다. 이라곤 서너 채가 전부인 조그만 동네에 있는 동금성이란 중국 음식점이었다. 이렇게 허름한 식당이 맛집으로 소문나서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누군가가 이 식당을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해물 볶음 자장을 시켰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해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소화를 시킬 겸해서 인근에 있는 명재 고택에 먼저 들렀다가 노성산에 오르기로 했다. 명재는 조선 숙종 때 학자였던 윤증 선생의 호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은 충청도 양반 가옥의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에겐 장독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발 348m의 노성산을 오르기 위해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길 위에 황금색 솔잎이 떨어져 있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일행들은 무슨 화제가 그리 많은지 재잘재잘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노성산 정상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어 땀 식히기엔 제격이었다. 동쪽으로 계룡산 봉우리들이 보였다.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이 통제되는 천황봉도 희미하게 보였다. 저녁은 절밥으로 공양을 들었다. 야채와 나물 반찬으로 가득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우리 손님상에는 싱싱한 굴 한 접시가 따로 올라왔다. 깔끔한 절밥으로 모처럼 입맛을 돋우었다. 특별한 대접을 받은 소중한 하루였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ㅋㅋ 2013.12.20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짜장은 순수한 볶음짜장인데 저건 물짜장이네요

  2. 보리올 2013.12.20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물자장이라니요? 솔직히 물자장이란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런 메뉴도 있나요? 전 저것이 볶음자장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3. 아우라마스터 2013.12.21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있는 짜장면이!!ㅋㅋㅋㅋ

  4. 보리올 2013.12.22 0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 짦은 댓글이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자장면 잘 하는 집이야 많지 않습니까. 얼른 한 그릇 드시고 오시지요.

  5. 설록차 2013.12.22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나푸르나에 비하면 동네 마실 수준이지만 힘든 일을 함께 한 동료를 만나는 기쁨은 더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글과 사진을 읽는 저도 몸에 힘들어 갔는데요...ㅎㅎ 이야기 거리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6. 보리올 2013.12.22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려운 일을 함께 하고 나면 그 뒷담화가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여자분들이 많으면 이야기가 훤씬 많아지지요. 기분좋은 수다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엔묘지에 대해 들은 적이 많았음에도 유엔묘지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를 못했다. 부산을 그렇게 드나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몇 년 동안 캐나다에서 꾸준히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전우가 묻혀 있는 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일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고국 방문길에 부산을 지나칠 기회가 있었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대연동에 있는 유엔묘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난 사실 캐나다에 계시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자주 만난 편이었다. 그들에게 개인적으로라도 고맙단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나라도 아닌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그들은 그렇게 했다. 노바 스코샤에 있을 때는 6 25일을 전후해 참전용사들과 충혼탑에 헌화한 후 함께 오찬을 가졌고, 연말에는 발레 공연이나 콘서트에 초청하거나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 자리를 빌어 그들이 보았던 한국, 그들이 치뤘던 전투,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전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유엔묘지는 정식 명칭이 아니었다. 유엔기념공원으로 불린다는 것을 현장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유엔기념공원은 6.25 전쟁 당시 산화한 유엔군 장병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유엔이 1951년에 만든 묘지였다. 유엔군 기념묘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모두 2,300위의 전몰용사가 여기 잠들어 있었다. 영국이 885위로 가장 많았고 터키와 캐나다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한국군도 수 십 명 묻혀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엄숙했고 공원 관리 또한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 주민들도 보였다.  

 

캐나다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UN군으로 참전을 했다. 27,000명이 참전해 516명이 산화했다. 그 중에 378위가 여기에 묻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70%가 넘는 전몰용사가 여기에 묻힌 것이다. 36,500명이 산화한 미국군은 대부분 미국으로 송환되고 여기엔 36위만 묻혀 있다는 사실과는 퍽이나 대조적이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각 나라 묘역을 천천히 돌아보며 그들을 잃고 눈물을 흘렸을 가족들을 떠올려 보았다. 캐나다 묘역에 설치된 기념동상 주변에선 더 오래 머물렀다. 유엔기념공원을 나와 그 뒤에 자리잡은 UN조각공원도 잠시 들러 보았다. 6.25 전쟁에 참전한 나라의 조각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12.07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용히 생각하면서 산책하기에 유엔묘지만 한 곳이 없었어요... 또래의 주검이 죽 늘어서 있는걸 보면 심각한 고민도 다 부질없게 느껴지거든요... 특이하게 유리뚜겅이 있는 박스에 소지품이 들어 있는 캐나다 or 미군 묘지가 있었는데 못보셨나요... 조각공원으로 바뀌면서 조형물이 들어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듯 합니다...

  2. 보리올 2013.12.07 1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엔묘지를 먼저 다녀오셨군요. 유리 뚜껑은 못 봤는데요. 일반인은 묘역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해서 자세히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특정인을 찾아갔기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캐나다 묘역 안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