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다 - 한국'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4.12.15 여주 영릉(英陵) & 영릉(寧陵) (2)
  2. 2014.12.12 [남도여행 ④] 화순 운주사 (4)
  3. 2014.12.11 [남도여행 ③] 순천 선암사 (4)
  4. 2014.12.09 [남도여행 ②] 보성 벌교/순천 와온 마을 (4)
  5. 2014.12.08 [남도여행 ①] 구례 화엄사 (6)

 

여주엔 영릉이 두 개나 있다. 물론 한자로는 다르게 쓴다. 위치로는 바로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영릉(英陵)은 조선조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무덤이고, 그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영릉(寧陵)은 조선조 17대 임금 효종대왕의 무덤이다. 사실 세종대왕의 영릉은 한두 번 다녀갔지만 효종대왕의 영릉은 그 옆에 있는지도 몰랐다. 두 분 다 조선조 임금이었는데 업적이나 유명세에 따라 우리가 차별을 하는 것 같아 속이 편치는 않았다. 여주를 지나는 길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세종대왕이나 만나고 가자고 영릉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과 뒤섞여 예상치 못한 효종의 능까지 돌아 보았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아 관리가 예전보다 훨씬 철저해진 것 같았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세종대왕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적으로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지폐에서 자주 접했던 왕이라 내심 친근함이 느껴졌다. 왼쪽으론 유물전시관인 세종관이 자리잡고 있고, 건물 밖에는 해시계와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세종대의 과학기구를 전시해 놓고 있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비각을 둘러보고 영릉 앞에 섰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내 눈길을 끈 것 외에는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았다.

 

효종대왕의 영릉은 7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조그만 능선을 하나 넘어가야 했다. 효종의 무덤은 위에 있었고 그 아래 좀 떨어져 인선왕후의 무덤을 따로 썼다. 세종은 소헌왕후와 합장을 했다고 하는데, 효종은 왜 부인과 따로 쌍릉을 썼는지 모르겠다. 왕릉의 규모도 세종의 영릉에 비해 좀 작지 않나 싶었다. 세종의 영릉에 비해 사람들도 적었다. 효종대왕은 지하에서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난 한산해서 더 좋았다. 여유롭게 영릉을 둘러 보았다. 바쁠 것 없이 천천히 걸어 두 개의 영릉을 돌았더니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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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승수 2014.12.15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까지 왕능은 경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역사 공부 시켜 주셔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전주에도 조경단이라고 이조시대 왕능과
    이성계 장군의 흔적이 있는 오목대가 있다는 것을 귀 흘려 지나가듯 했네요..
    전주 이씨들인데~~~

    개방 시기가 5월에서 10월 말인데 언제 다녀 오셨는지요?
    일본 여행에
    순천에서 한 바퀴하시랴...또 여주 까지..
    밴쿠버, 밴프등에 비하면 한나절 거리인데..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으니..흑흑흑..

    • 보리올 2014.12.15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한양 주변에 왕릉이 많지 않겠습니까. 서오릉, 서삼릉, 동구릉, 태릉, 선릉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지명이 많지요. 전 오늘 캐나다로 왔습니다. 2~3주 지내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운주사가 우리 남도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순천 송광사의 말사라 하지만 운주사는 석불과 석탑이 많은 사찰로 유명하다. 절 이름 또한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니 꽤나 낭만적이었다. 개인적으론 선암사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입장료를 내고 일주문을 지나 절로 들어섰다. 일주문에 걸린 현판의 글씨가 독특해 내 눈길을 끌었다. 담장도 치지 않은 운주사의 소박함에 벌써부터 운주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석탑과 석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지인에 대한 낯가림도 없이 바로 진면목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마치 한 가족이 해바라기를 하듯 돌부처들이 바위에 기대고 서서 우리를 맞았다. 석불의 얼굴이 제대로인 것이 거의 없었다. 좀 못생겼다고 하면 예의에 어긋난 것일까? 표정이 모두 제각각이었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희미한 얼굴에서 부처님의 온화한 기품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친숙함, 정겨움까지 느꼈다면 내가 오버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석불은 수십 cm의 작은 것부터 높이가 12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했다. 운주사에는 현재 석탑 12기와 석불 70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내 딴에는 석탑, 석불이 많다 생각했는데 옛날에는 산등성이를 돌아가며 1,000개의 석탑과 1,000개의 석불이 세워져 있었다니 나머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대웅전을 둘러 보았다. 우선 크거나 휘황찬란하지 않아 좋았다. 분위기도 그리 엄숙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대웅전 뒤로 올라가 보았다. 여기저기 세워진 불탑과 석불을 지나 공사바위까지 올랐다. 공사바위는 운주사 뒷산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오르면 운주사가 자리잡은 작은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을색으로 갈아입은 산자락과 고즈넉한 산사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절로 눈이 즐거워졌다. 날씨도 맑게 개어 기분을 돋우었다. 단풍이 든 나뭇잎에 살포시 내려앉는 한 줌의 빛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마지막으로 운주사를 유명하게 만든 와불을 보러 갔다. 천불천탑의 마지막 불상이라고 부르는 돌부처가 땅 위에 누워 있었다. 길이 12m에 폭이 10m라니 규모도 꽤 컸다. 그런데 머리 쪽이 더 낮아 제대로 균형이 잡히진 않았다. 사람들은 이 와불을 부부 와불이라 부른다. 두 기의 불상이 나란히 누워있기 때문이다. 실제는 이 불상들은 와불이 아니라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부처들이라고 한다. 이 불상이 세워졌더라면 운주사의 중심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세간에는 이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한다. 내 생전에 이 불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 세상을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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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1.10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개의 석탑과 천개의 석불이 있었을적 절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저는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래가 아닌 아주 오랜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을 간혹 합니다.

    • 보리올 2015.01.10 06: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운주사, 정말 정감이 가더구나. 꼭 다녀 오렴. 난 천불천탑이 존재했을 것이란 이야기는 믿지 않지만 우리에게 과거는 중요하지. 그래도 과거는 미래를 바라볼 때 더욱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냐?

  2. 설록차 2015.04.12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많은 석공의 땀과 정성,불심이 담겨 있으니 체온이 느껴지는듯 하겠어요..
    깊은 산 속에 자리해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푸근해 보여요..

    기억에 남아 있는 가을 풍경은 이런 모습인데...그립습니다...

    • 보리올 2015.04.12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운주사는 느낌이 퍽이나 좋았습니다. 불사에만 몰두하는 다른 절과는 확연히 다르더군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절이 있나 싶었습니다. 언제 한번 다녀오십시오.

 

순천 선암사로 가는 길에 가는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어제 내릴 비가 뒤늦게 오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선암사 주차장은 아침부터 인파로 붐볐다. 대형버스가 속속 들어와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마구 토해냈다. 이곳 또한 사시사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선암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번 다녀간 곳이다. 올 때마다 늘 사람들로 붐볐던 기억이 났다. 부슬비를 맞으며 사람들을 따라 나섰다. 길 양쪽에 세워진 장승이 우릴 반긴다. 아니, 절에 사천왕상은 보이지 않고 웬 장승이 대신 서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선암사는 조계종에 속하는 절이 아니라 태고종의 총본산이라 했다. 그러면 이 절에 계시는 스님들은 모두 대처승이란 말인가?

 

가을빛이 물씬 풍기는 오솔길을 1km 정도 걸어 승선교에 닿았다. 보물 400호라는 승선교는 선암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승선교가 있어서 선암사가 더욱 유명세를 타는 지도 모른다. 승선교 위를 지나는 스님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선암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실제 이 무지개 다리를 사진에 담기 위해 이곳에 왔었던 적이 있을 정도니 말해 무엇 하랴. 승선교 아래로 내려서 가을 분위기 풍기는 장면을 찾았지만 주변의 단풍이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승선교 아치 사이로 보이는 강선루를 넣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근데 또 다른 궁금증이 일었다. 선암사, 승선교, 강선루 등의 명칭에 왜 신선을 의미하는 선() 자를 썼느냐 하는 것이었다. 설마 스님들이 해탈의 경지보다는 신선이 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닐테지. 그런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삼인당이라 불리는 조그만 연못 주위가 그래도 가을 분위기를 가장 많이 풍겼다. 연못을 돌며 나름 가을 정취에 취해 보았다. 육조고사(六朝古寺)란 현판을 달고 있는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 앞에 섰다. 두 개의 삼층석탑이 좌우 균형을 맞춘 듯 마당에 세워져 있었다. 대웅전도, 삼층석탑도 모두 보물에 해당한단다.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몇 명 보였다. 이들 눈에는 한국 불교의 위상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선암사의 또 하나 명물인 해우소를 찾았지만 보수 중이라고 출입을 금지시켜 놓았다. 대웅전을 둘러싼 전각들을 돌며 산사에 남아있는 가을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아직 추색이 완연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멀리 남도까지 내려온 보람은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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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1.08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승선교를 보니까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자를 잰듯이 맞춰서 아치를 쌓았을까요? 너무 정교하면서 깔끔하고 소박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품성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5.01.08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것이 한 나라의 문화 수준 아니겠냐? 선암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 후 선암사를 중창할 때 이 승선교를 축조했을 것이라니 한 3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구나.

  2. 설록차 2015.04.11 0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다리가 아름다워요..
    일부러 강선루를 다리 사이에 보이도록 지었나 봐요..
    이름난 곳은 어디나 사람이 몰리는 한적한 사진은 좀 어렵겠습니다..

    • 보리올 2015.04.11 14: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승선교 덕분에 선암사가 더 유명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름다운 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오니 한적하고 고요한 산사와는 거리가 멀구요.

 

화엄사를 나와 벌교로 향했다. 그 유명한 꼬막 정식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서다. 어느 식당엔가 미리 예약을 해놓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벌교 외곽부터 이상하게 차량 정체로 길이 막혔다. 무슨 일인가 하고 교통경찰에게 물었더니 하필이면 이때 벌교 꼬막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줄 알았다면 숙소로 잡은 순천으로 바로 가는 것인데 그 놈의 꼬막 정식 때문에 시간만 지체한 셈이다. 거북이 운전으로 시내로 들어가 수라상 꼬막 정식이란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거의 모든 식당이 꼬막 정식을 내세우고 있었고, 그 대부분이 <12>이란 TV 프로그램에 나온 것처럼 12일을 붙여놓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런 짓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어느 집이나 비슷했다. 꼬막이 들어간 몇 가지 음식이 나왔고 우린 일부러라도 맛있게 먹었다. 실제로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반주로 식사를 하니 어떤 음식인들 맛이 없으랴.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더니 무슨 행사를 하는지 확성기 소리가 요란했다. 다리를 밝힌 조명이 물에 반영되어 축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소화다리를 건너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곤 순천으로 향했다. 와온 마을엔 밤늦게 도착했다. 한옥으로 지은 민박집에 방 두 개를 얻었다. 밖에 테이블을 놓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릴에 불을 지펴 분위기도 띄웠다. 그런데 두 친구가 비박을 하겠다고 방파제로 간다는 것이 아닌가. 나도 침낭은 가져 왔기에 따라 나섰다. 매트리스도 없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자기는 처음인데 냉기가 없어 견딜만 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아마 바다는 우리 코고는 소리에 밤새 잠을 설쳤을 게다.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깼다. 행여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 별다른 감흥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라면으로 아침을 먹곤 따뜻한 커피까지 내려 마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벌교엔 꼬막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긴 했지만 우리도 벌교의 특산물인 꼬막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온통 꼬막 정식만 파는 식당들 속에 깔끔한 커피 전문점이 있어 커피 한 잔 하는 여유를 부렸다.

 

 

순천 와온 마을에 있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은 방파제로 나가 비박을 한다고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고즈넉한 어촌 마을의 아침 풍경을 홀로 즐길 수 있었다. 인적도 없고 바다마저 잔잔해서 좀 심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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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4.12.16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꼬막은 저도 생소합니다. 조개과라고 하는데 아담한 것이 맛있어보입니다.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방파제에서 하는 비박은 저도 시도해봐야겠습니다.

  2. 설록차 2015.04.14 0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꼬막을 삶아서 알맹이를 꺼내어 도로 껍질에 담아 양념장을 바르고~ 한접시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아니겠어요...
    침낭이 있다지만 방파제 위에서 주무시다니 젊은이십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12일로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변산과 선운산을 연달아 산행하려 했는데 폭우가 온다는 일기 예보에 갑작스레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행선지를 바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디를 가는 지도 모른 채 따라 나섰다. KTX로 대전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합류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옵저버 2명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구례로 향했다. 지리산 피아골 산행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거론되었지만 그곳 또한 엄청난 행락 인파에 차량 정체를 빚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바로 화엄사(華嚴寺)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예보와는 달리 날이 좀 궂기는 했지만 빗방울이 잠시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화엄사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웅장한 규모도 여전했고,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각황전이나 석등, 불탑도 그대로였다.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붐비는 것만 제외하면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새로운 불사 일으킨다는 광고만 빼고 말이다. 각황전 앞을 서성이며 화엄사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던 스무 살 남짓의 내 자신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는 화엄사가 왜 그리 크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4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혼자 노고단을 오르다가 운무에 길을 잃고 얼마나 산 속을 헤맸던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산사를 둘러 보았다.

 

노란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걸어 구층암(九層庵)으로 향했다. 가을 정취가 물씬 배어 있었다. 천불보전을 구경하고 다시 발길을 연기암(緣起庵)으로 돌렸다. 대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 많던 행락객도 여기에선 볼 수가 없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계곡으로 내려서 김밥과 사발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막걸리 한 잔도 빠지지 않았다. 연기암 부근은 가을색이 더 짙었다. 높은 산을 오르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더구나 옛 친구들과 정겹게 이야길 나누며 걷는 길이라 부담이 없어 좋았다. 이 오솔길 산책이 얼마나 좋았던지 한 친구는 힐링의 길을 걸었노라 실토를 했다.

 

 

대전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구례에 닿았다. 누렇게 익은 나락이 고개를 숙인 채 우리를 반겼다.

 

 

 

 

 

 

 

 

 

오랜만에 다시 화엄사를 찾았다. 화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각황전 등 4점의 국보와 보물 4점을 간직하고 있다.

 

구층암의 천불보전.

 

 

 

 

구층암에서 연기암에 이르는 오솔길이 운치가 있어 좋았다.

단풍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어 가을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기암을 오르니 멀리 섬진강이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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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성형외과 2014.12.08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풍이 살아있네요^^

    날씨는 춥지 않았나요?

    • 보리올 2014.12.08 1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날씨가 흐려서 오히려 단풍의 색감이 살아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햇빛이 있었더라면 투영광은 좋았겠지만 너무 현란할 수 있거든요. 제가 갔을 때가 11월 초라 그리 춥지는 않았습니다.

  2. justin 2014.12.12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미래에 갔다온 기분입니다. 저도 나중에 친구들과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을 갔다오겠죠? 한국 단풍은 참 곱고 이쁩니다. 나무들이 한복을 입고 방기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3. 설록차 2015.04.14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고운 가을색이에요...
    대나무밭 사이에서 나는 쏴~ 하는 소리...신비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분들도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산행동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