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드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어느 도시를 가던 정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호주는 영국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인지 정원을 갖추고 있는 도시가 의외로 많았다. 울런공에도 보태닉 가든스(Botanic Gardens)가 있어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로 향했다. 정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짜임새 있게 가꿔 놓은 점은 높이 칭찬할 만했다. 나무나 꽃의 종류, 서식지에 따라 로즈 가든, 허브 가든 하는 식으로 열댓 개의 가든 또는 콜렉션으로 구분해 놓았다. 그 사이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이런 곳에서 놀이를 하며 초목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일본식 다리가 있어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의 자매도시인 가와사키에서 선물로 지어준 것이라 한다. 일본은 이런 짓을 참 잘 한다. 정원을 다 둘러보지도 못 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자에서 비를 피하며 사람도 없는 정원을 홀로 지켰다.

 

비가 그쳤다. 보태닉 가든스에서 나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울런공 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에 들렀다. 학생수가 자그마치 37,000명에 이르고, 외국 유학생도 10,000명이나 된다는 엄청난 규모의 대학이었다. 1951년에 설립되어 현재는 호주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대로 성장했다고 한다.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은 좀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이 많다는 느낌은 없었다. 규모에 비해선 무척 한적하다고나 할까. 발길 닿는 대로 캠퍼스를 여기저기 돌아 다녔다. 학교 경내에 있는 모든 건물을 둘러 보진 않았지만 학교나 건물이 그렇게 크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더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풍스러움과 화려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천천히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울런공 대학교 순례를 마쳤다.



울런공 보태닉 가든스는 규모에 비해선 상당히 알차게 가꿔 놓은 정원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서식지나 수종에 따라 분류되어 심어져 있었다.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 하는 꽃들이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선인장 가든에서 운이 좋게도 막 꽃을 피운 선인장을 볼 수 있었다.


몸통은 검고 빨간 부리를 가지고 있는 퍼플 스웜펜(Purple Swamphen)이 정원을 유유자적 거닐고 있다.




호주 명문대 가운데 하나인 울런공 대학교 캠퍼스를 돌아 보았다.



울런공 대학교 안에 있는 구내 식당에서 소고기 케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울런공 노스 역에서 열차를 타고 시드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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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palli5 2018.04.16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봤습니다 ^.^
    오늘도 조은하루 되세요

  2. justin 2018.05.09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개인이 각자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듯이 그 개인들이 합쳐져서 그 나라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가치있게 보고 있는지 명확합니다!

    • 보리올 2018.05.10 0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지적이다. 오랜 전통과 습관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가치관이 이런 문화를 꽃피웠을 테지. 속으로 많이 부럽더구나.

 

날씨는 화창했고 기온도 선선해 출발이 순조로웠다. 길가에 파이어위드(Fireweed)가 꽃을 피워 가을 분위기를 풍겼다. 샹페를 벗어나 얼마간은 숲길을 걸었기 때문에 조망이 트이진 않았다. 산속에 숨어있는 집들을 지나치며 꾸준히 고도를 올렸다. 길에서 만난 영국 중년부부는 14, 16살의 두 딸을 데리고 뚜르 드 몽블랑 종주를 하고 있었다. 캠핑을 하면서 열흘에 걸쳐 전구간을 걷고 있다고 했다. 네 식구 각각의 배낭 크기가 엄청났는데, 그 가운데 유일한 남자인 가장의 배낭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용감한 가족의 백패킹이 무척 부러웠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시야가 점점 트이기 시작했다. 산기슭을 돌아섰더니 해발 1,987m의 보빈 알파즈(Alpage de Bovine)가 나왔다. 여름철에 소나 양을 키우던 목장인데, 요즘엔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상대로 맥주나 커피, 블루베리 타트를 팔아 재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보빈 알파즈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병을 시켜 놓고 즐기는 조망이 아주 훌륭했다. 솔직히 뚜르 드 몽블랑의 풍경은 스위스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아래론 론 계곡(Vallee du Rhône)이 자리잡고 있었고, 저 멀리엔 베른 알프스(Bernese Oberland)에 속하는 산군이 그 옹골참을 뽐내며 우리를 맞았다. 여기서 마터호른(Matterhorn, 4478m)도 보인다 하는데 내 육안으론 식별이 어려웠다. 해발 1,527m에 있는 포르클라 고개(Col de la Forclaz)에서 다시 한 번 쉬었다. 차량이 다니는 휴게소라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우리가 묵을 트리앙 마을이 바로 아래에 보였지만 꽤 경사가 급한 길을 조심스레 내려서야 했다. 마을 가운데 분홍색 칠을 한 교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샹페를 벗어난 산길에 파이어위드가 분홍색 꽃을 피운 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산속 깊은 곳에 사람 사는 집들이 가끔 나타나곤 했다.

 

 

초반엔 완만한 숲길을 따라 꾸준히 올라야 했다. 영국에서 왔다는 한 가족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우리 앞을 걷고 있었다.

 

 

 

 

 

 

 

 

고도를 올리자 시야가 탁 트이며 주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산 아래엔 론 계곡이 지나고 있다.

 

 

 

조망이 아주 훌륭했던 보빈 알파즈에서 맥주 한 잔 하는 여유도 부렸다.

 

 

차량 통행이 많은 포르클라 고개는 커다란 식당도 있어 휴게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포르클라 고개에서 트리앙 마을로 내려서고 있다.

 

 

트리앙은 인구 200명을 가진 조그만 산골 마을이지만 뚜르 드 몽블랑 덕분에 여기서 하룻밤을 묵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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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도 2016.12.03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중한 산행정보 잘 보았습니다.

  2. justin 2016.12.07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든 생각인데 저희 가족이 백패킹으로 산에 들어가서 1박 2일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영국 BBC 방송사에서 죽기 전에 보아야 할 세계적 명소로 50군데를 선정해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방송에서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즉 대망의 1위를 차지한 곳이 바로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콜로라도(Colorado) 강이 고원을 깎아 만든 협곡으로 실로 대자연의 걸작이라 부를만 했다. 이 세상 어느 협곡보다 뛰어난 경관과 자연의 경이를 지니고 있어 유명 관광지가 된지 오래다. 협곡을 이루는 절벽에서 20억년이란 시간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난 이 그랜드 캐니언을 제대로 보고 싶어 사실 아껴놓고 있었다. 사우스 림(South Rim)에서 1,600m 아래에 있는 협곡 바닥으로 내려가 하룻밤 야영을 하고 노스 림(North Rim)으로 올라오는 백패킹을 꿈꿨으나, 어쩌다 보니 집사람과 하루 일정으로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간보기라 할까.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협곡을 중심으로 남쪽은 사우스 림, 북쪽은 노스 림으로 나뉜다.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우스 림을 찾는다. 교통이 편리하고 연중 오픈하기 때문이다. 노스 림은 겨울이면 출입을 통제한다. 그랜드 캐니언 방문자 센터를 출발해 림 트레일(Rim Trail)로 들어서 마더 포인트(Mather Point)에서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까지 걸었다. 이 짧은 거리를 걷는데도 엄청난 풍경이 우리 눈 앞에 펼쳐졌지만 너무 눈에 익은 풍경이라 가슴이 먹먹한 감동은 일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와서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 백패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만 살짝 보는 그랜드 캐니언이 아니라 몸으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그랜드 캐니언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랜드 캐니언 방문자 센터에 들러 공원에 대한 정보부터 얻었다.

 

 

 

그랜드 캐니언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협곡을 만나게 되는 곳이 마더 포인트일 것이다.

 

림 트레일을 걷다 보면 협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수시로 나타난다.

 

 

 

야바파이 포인트도 전망이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일출로 유명한 전망대다.

 

 

야바파이 지질 박물관은 그랜드 캐니언의 지형과 역사, 화석 등을 전시하고있었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내에선 무료 셔틀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넓은 각도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볼 수 있는 호피 포인트(Hopi Point)는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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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9.20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진으로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저도 한번도 안 가봤는데 죽기전에 꼭 가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저도 직접 하이킹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갈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 보리올 2016.09.21 0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랜드 캐니언에 필적할만한 대자연의 걸작품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저 앞에 서 있으니 인간이 참으로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가보고 협곡 아래로 하이킹도 해보거라.

 

 

퀸스타운은 뉴질랜드 남섬의 오타고(Otago) 지방에 있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빅토리아 여왕에 어울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영국에 대한 해바라기는 가히 놀랄만하다. 그렇다고 퀸스타운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와카타푸(Wakatipu) 호숫가를 산책하며 일견해 보아도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 사는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복 받은 도시였다. 1860년대 이 근방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그 사건으로 외지에서 사람들이 유입되어 생겨난 도시라는데 지금은 금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퀸스타운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액티비티를 즐기진 못 했다. 그래서 와카티푸 호수를 따라 걸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80km에 이르는 호수에서 우리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이 호수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퀸스타운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본 와카티푸 호수

 

 

 

 

와카티푸 호숫가를 산책하며 퀸스타운의 풍경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퀸스타운 가든스(Queenstown Gardens)18홀의 프리스비 골프(Frisbee Golf) 시설이 있었다. 골프와 비슷한 룰에 따라

프리스비란 원반을 던져 횟수를 기록하는 이 골프는 1980년대 초에 시작해 1996년 영구 시설로 인정받았다.

 

 

 

 

와카타푸 호숫가에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많았다.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호숫가에 위치한 배쓰 하우스 카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그레이마우스에서 생산되는 몬티스(Monteithj) 맥주를 마셨는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

 

 

퀸스타운의 명물인 퍼그버거(Fergburger)를 찾아갔지만 주문을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지레 포기를 했다.

 

고급 와인을 포함해 80종 이상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와인 바가 있어 들러 보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는 늦은 시간에 도심을 걷다가 맥주 한 잔 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도 젊은이들로 꽤나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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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5.12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퍼그버거를 못 먹은것이 미련이 남습니다.

 

오클랜드로 입국해 크라이스트처치에 닿았다. 입국 절차도 까다로웠고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통과 후에 다시 국내선 청사로 이동해 짐을 부치는 것도 번거로웠다. 음식이나 과일 반입에 유별나게 신경 쓰는 것이야 뭐라 하긴 어렵지만 등산화 반입까지 조사를 하니 좀 의아하긴 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캔터베리 주의 주도로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라 한다. 2010년에 이어 2011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도시가 심하게 피해를 입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진 설계를 반영해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그리 늦은 것인지, 아니면 도시 재건에 소요되는 자원이 한정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19세기 영국 사회를 모델로 건설해 영국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는 아름다운 도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방치된 반파 건물이나 비계로 둘러싸여 복구 중인 건물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섰다. 바로 커시드럴 스퀘어(Cathedral Square)가 나왔다. 63m의 첨탑은 무너지고 대성당도 반쯤 허물어져 철조망으로 격리되어 있었다. 1901년에 완공되었다는 신의 공간도 자연 재해는 이겨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커시드럴 스퀘어에서 트램에 올랐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로 통하는 트램을 타고 도심을 먼저 일견한 것이다. 카드보드 대성당(Cardboard Cathedral)은 일본 건축가의 설계로 2013년에 지어졌다. 98개의 카드보드 튜브를 사용해 임시로 지은 대성당은 뾰족한 삼각형 형상에 창문 또한 삼각형으로 낸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트램에서 내려 발길 닿는 대로 도심을 걸었다. 리스타트 몰(Re:Start Mall)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옆에 컨테이너를 사용해 쇼핑몰을 만든 발상 자체가 신기했다. 가게뿐만 아니라 카페나 푸드 트럭도 들어와 있었다. 식물원(Botanic Gardens)도 한 바퀴 돌았다. 한가롭게 걸을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도심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오클랜드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해 크라이스트처치 행 항공편으로 갈아탔다. 에어 뉴질랜드 항공기만 눈에 들어왔다.

 

 

커시드럴 스퀘어는 반쯤 무너진 대성당 옆에 자리잡고 있다.

 

 

 

커시드럴 스퀘어에서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로 통하는 트램에 올랐다. 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는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을 대신해 임시로 지은 카드보드 대성당은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도심 전체가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처에 콘테이너를 가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리스타트 몰도 콘테이너를 사용한 상가였는데 밝은 색상으로 외관을 칠해 분위기가 좋았다.

 

 

 

에이번 강(Avon River)으로 둘러싸인 크라이스트처치 식물원을 한가롭게 걸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하늘엔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현지인이 주저 없이 최고로 꼽은 스트로베리 페어(Strawberry Fare) 레스토랑. 무심코 양고기를 시켰는데 푹 삶아 잘게 찢어 나온 양고기가 파파르델레라 부르는 넓고 납작한 파스타 면 위에 얹어 나왔다. 새로운 시도였지만 그리 입에 맞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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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5.25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질랜드에 저리 심한 지진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상황에 맞게 적응해가는 모습이 좋습니다.

    • 보리올 2016.05.27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도 뉴질랜드란 나라에 인프라가 없으니 대책이 없는 듯 했다. 건설 장비나 인력도 부족하고 사람들 성격도 느긋한 편이니 그저 시간이 해결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