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9.04.1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② (4)
  2. 2018.09.10 [베트남] 호이안 ③ (8)
  3. 2018.09.03 [베트남] 호이안 ① (2)
  4. 2018.08.21 [베트남] 후에 ① (4)
  5. 2018.03.18 [호주] 시드니 ③ (2)

 

 

12세기에 암스텔(Amstel) 강 하구에 둑을 쌓아 도시를 만들어 오늘날 네덜란드의 최대 도시로 발전한 암스테르담. 황금 시대(Golden Age)라 불리는 17세기에 무역업으로 경제적인 번영을 이뤘다. 국토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에서 뻘밭을 개간해 이런 국제적인 도시로 변모시킨 네덜란드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아다시피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다. 도심엔 크고 작은 운하가 거미줄처럼 엉켜 부채꼴 모양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90개의 섬을 1,200개 다리로 연결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처럼 매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17세기에 건설된 운하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지도도 없이 발길 닿는대로 운하를 따라 걸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로와 다리, 운하 때문에 내가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 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암스테르담에서 운하를 따라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운하가 암스테르담의 골목길 역할을 했다. 운하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운하 주변에 늘어선 폭이 좁은 주택들 또한 묘한 매력을 풍겼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장난감 같은 집들이 운하를 따라 빼곡히 자리잡은 모습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운하를 달리는 보트 외에도 운하엔 수상가옥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 눈엔 배에서 살아가는 생활이 낭만적으로 보였지만, 실제 거기서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앙역 앞에 있는 운하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업용 보트나 크루즈가 많았다.

 

 

 

운하를 따라 올드 처치(De Oude Kerk)가 있는 주변을 거닐었다.

 

 

 

 

 

 

 

 

 

 

네덜란드 특유의 주택들이 운하를 따라 도열해 있다.

3~4층의 낮은 건물에 건물 꼭대기는 삼각형 형태를 가지고 있고 폭은 무척 좁았다.

 

 

 

운하에 계류한 상태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수상가옥이나 배가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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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ellbijou 2019.04.15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암스테르담 = 자전거 뇌리에 박혀있음 ㅋㅋㅋㅋㅋㅋ

  2. 파라다이스블로그 2019.04.15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파라다이스 공식블로그입니다 :)
    수상도시라서 그런지 건축 양식이 특이해서 관심 있게 보게 되네요.
    수상가옥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집니다 :)



호이안은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진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기독교가 베트남에 상륙한 것도 17세기 호이안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다낭이 새로운 무역항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호이안은 상대적으로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이런 까닭으로 호이안이 오랜 기간 과거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이안은 오랜 세월을 버텨낸 전통 가옥과 좁은 골목으로 유명하다. 꼭 베트남 방식의 전통 가옥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무역항답게 중국과 일본의 건축 양식도 자연스레 섞이게 된 것이다. 조그만 마을임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일 것이다. 목조 건물이 주를 이루는 건축물은 대부분 외관을 노란색으로 칠해 도심을 밝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색이 점차 퇴락하여 내 눈에는 더욱 정감이 넘치는 색채로 바뀌어 있었다. 오후 들어 몰려드는 관광객과 뒤섞여 호이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널찍한 도로를 걸으며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호이안엔 노란색으로 치장한 건물이 많아 나름 독특한 도심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전통 양식의 건축물에는 상점이나 카페, 레스토랑 등이 관광객을 상대로 성업 중이었다.




호이안은 베트남 전통 등으로 장식한 야경이 워낙 유명한 지역이라 대낮에도 등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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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뷰왕Patrick 2018.09.10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등이 굉장히 화려하네요 ㅎ 호이안 이라는 곳은 좀 낯선데 여기도 가볼만 하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ㅎㅎ

  2. 런투 2018.09.18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밤에 보는 등불은 정말 예쁘더라구요.
    낮밤 모두 아름다운 곳이 호이안이더라구요

  3. justin 2018.10.16 2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색깔하나가 마을 전체 분위기라든지 여러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신기합니다!

    • 보리올 2018.10.17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렇게 마을 전체를 하나의 색깔로 통일하려면 전통이나 기후, 주민들의 합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있었을 게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그 마을의 캐릭터로 굳을테고.



카멜 버스로 후에를 출발해 다낭(Da Nang)을 경유, 호이안(Hoian)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바로 호이안 구경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걸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다. 요즘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다낭에서 40분 거리에 있어 그리 멀지 않다. 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음에도 한때는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활약을 했다. 약간은 퇴락해 보이는 건물들이 세월을 머금은 채 빼곡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많은 전쟁을 치룬 나라에서 여기는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덕분에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이리라. 골목을 몇 군데 돌고 났더니 허기가 져서 길가 식당에서 바게트에 각종 재료를 넣은 반미(Banh Mi)로 점심을 때웠다. 입에도 맞았지만 간단하게 먹기도 좋았다.

 

호이안은 투본(Thu Bon) 강가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훼손되지 않은 건축물이 남아 있어 베트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일본인이 지었다는 내원교(來遠橋) 앞에 섰다. 일본교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다음 해인 1593년에 여기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들이 지었다는 한국 관광객의 가이드 설명이 들려왔다. 당시엔 일본인 마을이 있을 정도로 일본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가끔 중국 화교들이 세웠다는 사원이나 회관, 화교들이 살았던 고택을 볼 수 있었다. 1786년 중국 광동 출신 상인들이 지었다는 광조회관(廣肇會館)의 패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삼국지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삼국지 주요 인물을 그린 그림이 많았다. 일본, 중국 풍의 건물이 많다는 것은 호이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버스가 호이안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이나 정류장도 아닌 길가에 차를 세우곤 사람들을 내렸다.


마을 진입로에 호이안을 소개하는 간판부터 나타났다.



일본 상인들이 16세기 말에 지었다는 내원교. 돌다리에 지붕이 있고 한쪽에 사찰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광조회관은 광동 출신 화교들이 재물의 신, 관우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었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사찰, 법보사(法寶寺; Chau Phap Bao)


호이안 거리에도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자전거도 가끔 눈에 띄었다.



미술품이나 공예품을 파는 가게



유행에 민감한 신사복이나 숙녀복을 취급하는 상점도 있었다.



월남쌈의 재료인 라이스페이퍼, 즉 반짱을 만드는 공장도 둘러 보았다.



반미를 팔던 길거리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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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10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곳이라도 전쟁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고 보존되어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 나라도 그 많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유적, 유물이 참 많이 남았을텐데 아쉽기만 하네요~

    • 보리올 2018.10.14 0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타깝지만 전쟁통에 사라지는 유적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전쟁이 없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하노이에서 신투어버스로 후에(Hue)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날씨가 계속되어 비를 피해 남쪽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침대가 설치된 버스는 밤새 쉬지 않고 달려 베트남 중부에 있는 후에까지 13시간이 걸렸다. 키가 작은 베트남 사람의 신체를 기준으로 침대를 만들었는지 난 다리를 펴고 누울 수가 없었다. 옆으로 모로 누워 구부린 자세로 버텨야 했다. 그나마 버스 안에 와이파이가 잡혀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이 버스에 대해 악평이 많았지만 침대 사이즈를 빼곤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아침 7시에 후에에 도착했다. 전날 급히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곤 시내로 나섰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DMZ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여기도 한때 남과 북 베트남이 대치했던 국경이 있던 곳이라 DMZ 투어가 인기라더니 그 단어를 식당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외관 인테리어를 특이하게 드럼통으로 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후에는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을 통치했던 응우옌(Nguyen)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도시다. 1945년 왕조가 무너지고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도가 하노이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인구는 35만 명이라 한다. 후에 왕궁과 티엔무 사원(Chua Thien Mu)의 파고다 등 역사 유적 덕분에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치열했던 후에 전투를 치르면서 미군의 폭격으로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먼저 흐엉 강(香江)을 찾았다. 가을이면 상류에서 떨어진 난초 꽃잎이 향수와 같은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향강이란 이름을 얻었다. 철교 아래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들이 부지런히 오고 갔다. 흐엉 강 남쪽으론 주로 호텔이나 상가 등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침대가 있는 야간 버스를 이용해 하노이에서 후에로 이동했다.




드럼통을 이용해 외관을 장식한 DMZ 레스토랑





흐엉 강을 오르내리며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유람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흐엉 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떠날 채비를 마친 유람선에는 어느 젊은이를 위한 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흐엉 강 위에 놓인 즈엉 티엔(Truong Tien) 다리는 교통량이 꽤 많았다.



도로 옆의 인도에 임시로 장이 섰다. 파는 물건이 약초인지, 야채인지 확인이 어려웠다.


안히엔(安軒) 정원으로 드는 입구에서 곤히 잠든 현지인 모습.



길거리 식당에서 쇠고기가 들어간 분보(Bun Bo)로 점심을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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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루트래블 2018.08.21 0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2. justin 2018.09.18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분보 같은 국수를 먹으면 가격이 몇 동이나 해요? 여기 한국은 아무리 봐도 너무 비싸게 파는 것 같아요~

    • 보리올 2018.09.19 0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길거리 식당에서 먹는 베트남 음식 대략 3만~5만동 정도 한다. 우리 돈으로 치면1,500~2,500원 정도. 준비도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지.




시드니 명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누가 뭐라 해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를 함께 찍은 이미지는 시드니뿐만 아니라 호주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간주된다. 2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시드니를 찾았을 때도 오페라 하우스를 가장 먼저 보고 싶었고, 여유 시간을 얻어 그 앞에 섰을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도 했다. 이 앞에 서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이번에 다시 찾은 시드니는 감회가 좀 달랐다. 시드니에서 주로 걸어 다니거나 오팔 패스를 이용해 대중교통을 탔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길이 오페라 하우스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분에 오페라 하우스를 대여섯 번인가 찾아간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환상도 어느 정도 깨지고 가슴 설레는 일도 사라졌다. 시드니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에서 내겐 그렇고 그런 건축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59년에 착공해 1973년에 오픈한 이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아니, 세계적으로도 무척 유명한 건축물로 인정받는다. 오죽하면 현대식 단일 건물임에도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을까. 덴마크 건축가 외른 우쏜(Jørn Utzon)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도중에 착상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에 특이한 형태의 지붕 모양을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연결고리가 나름 재미있다. 한 건축가의 창의적인 착상 하나가 우리 인류에게 대단한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비록 그렇다 해도 오페라 하우스만으로 포스팅을 하려니 내용이 빈약하긴 하다. 여러 번 방문하다 보니 이미지가 많아서 그리 되었다. 그래도 촬영 날짜와 하늘이 다르고 일부는 야간에 찍기도 해서 느낌이 조금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오후에 오페라 하우스를 만났다. 날이 뜨거워 그런지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밤에 다시 찾은 오페라 하우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지붕 형상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갑작스레 불꽃놀이가 벌어졌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구름이 많이 낀 날이라 파란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오페라 하우스는 온화한 표정을 짓는 듯 했다.



오페라 하우스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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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4.05 1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스럽게 건축물의 중요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기에 오페라하우스 대신 그저 평범한 고층빌딩이나 부둣가가 형성이 되었다면 시드니는 저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