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하면 단풍잎이 먼저 생각난다는 사람이 많다. 오죽하면 국기에도 단풍잎이 들어가는 나라 아닌가. 그에 걸맞게 캐나다엔 단풍나무가 많고 그 중에는 메이플 시럽(Maple Syrup)을 만드는 당단풍나무(Sugar Maple Tree) 또한 많다. 우리 나라에서 고로쇠를 채취하듯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2월 중순부터 4월 중순의 기간에 당단풍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오랜 시간 졸이면 달콤한 메이플 시럽을 얻을 수 있다. 40리터의 수액으로 1리터의 메이플 시럽이 나온다고 한다. 메이플 시럽은 아이스 와인과 더불어 캐나다를 대표하는 특산품 가운데 하나로 궤벡(Quebec) 주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다. 전세계 물량의 70%를 퀘벡에서 생산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노바 스코샤에도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 얼타운(Earltown)이란 조그만 마을에 있는 슈가문 농장(Sugar Moon Farm)이었다.

 

슈가문 농장의 레스토랑에 가면 통밀가루로 막 구워낸 팬케이크에 여기서 직접 만든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려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 달달한 맛에 한번 중독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주말이면 가족을 동반해 많은 사람들이 여길 찾는 것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수액을 채취하는 시기를 잘 맞추면 농장에서 메이플 시럽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으나 그 시기를 제대로 맞추진 못 했다. 대신 주인이나 직원에게 부탁하면 아무 때나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생산 설비를 둘러볼 수 있다. 따로 돈을 받지는 않는다. 겨울에는 메이플 시럽으로 군것질거리를 만드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메이플 시럽을 끓여 눈 위에 길게 부운 다음 막대로 둘둘 말아 슈가 캔디를 만든다. 이것을 여기선 슈가 온 스노(Sugar-on-Snow)라 부른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사먹던 달고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슈가문 농장으로 드는 초입의 한가로운 풍경이 방문객을 맞는다.

 

 

 

 

 

통나무로 지은 슈가문 농장 건물로 들어서면 메이플 시럽 판매대와 커다란 통나무 테이블이 있는 레스토랑을 만난다.

 

 

노바 스코샤 맛집(Taste of Nova Scotia)으로 등재되어 있어 여길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는 것이 가장 유명한 메뉴지만 와플이나 비스켓, 소시지, 삶은 콩 등도 주문할 수 있다.

 

핼리팩스에 있는 개리슨(Garrison) 맥주공장에서 슈가문 농장의 단풍나무 수액을 써서 만든 슈가문 메이플 에일(Sugar Moon Maple Ale)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생산 시설을 둘러보았다.

 

슈가문 농장 뒤로 당단풍나무 숲이 있는 지역으로 가는 접근로가 있다.

 

 

 

 

농장 주인인 퀴타(Quita)가 어린이 고객들을 위해 슈가 온 스노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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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상무상무상 2020.06.30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인지 캐나다의 국기는 메이플이라죠? ^^

 

노바 스코샤, 나아가 캐나다를 대표하는 역사 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루이스버그 요새에 있는 시설을 둘러볼 시간이다. 1961년 들어 캐나다 정부는 과거 영국군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된 유적을 고증을 거쳐 재건에 착수하였다. 요새에 있는 건물이나 거리, 정원 등을 모두 1740년대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100여 명의 인력을 고용하여 18세기 생활 방식을 재현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셔브룩 빌리지(Sherbrooke Village)와 같이 여기도 옛 생활 방식을 둘러볼 수 있는 민속촌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방문객을 상대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거나 행사 내용을 설명하는 해설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프랑스 군인 복장을 하거나 대장장이, 빵을 구워 파는 사람, 생선장수, 레이스를 만드는 할머니, 세탁하는 여인 등 18세기 삶을 재현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어디를 가든 무료하지 않아 좋았다.

 

정문에 해당하는 도펭 게이트를 통과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정문을 지키는 위병이 어깨에 총을 메고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막는다. 영국 스파이가 아니냐고 물으면 아니란 대답을 해야 안으로 들인다. 실소가 나오는 장면이지만 나름 재미도 있다. 요새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킹스 배스티언(King’s Bastion)부터 들렀다. 가장 큰 건물로 과거 500명에 이르던 프랑스 군인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시간을 잘 맞추면 그 앞에서 군인들이 머스켓(Musket) 총을 발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민들이 살았던 정착촌의 모습은 여러 가지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 건물 또한 독특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고 내부 인테리어나 소품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마을엔 민병대가 총을 메고 순찰을 돌고 사교장에선 댄스 파티가 한창이며, 와인 저장고엔 오크 통이 보관되어 있었다. 요새를 빠져나올 즈음엔 군인 몇 명이 바다를 향해 대포를 쏘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500여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생활했던 곳으로 알려진 킹스 배스티언 건물

 

 

킹스 배스티언 앞에선 매일 정해진 시각에 머스켓 총을 발사하는 장면을 시연한다.

 

막사에선 총기를 정비하는 등 군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착민이 살았던 마을을 돌며 서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둘러볼 수 있었다.

 

사교장에선 댄스 파티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와인 저장고

 

 

대포를 발사하는 장면도 방문객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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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gSugar 2020.06.10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비오는 밤이네요. 좋은밤 되세요:)

 

 

픽토 카운티(Pictou County)의 픽토는 작은 소읍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으론 노바 스코샤(Nova Scotia)란 지명이 태어난 곳이다.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농사 대신 양을 키우려는 지주들 횡포 때문에 졸지에 농지와 생활 터전을 잃은 189명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1773915일 헥터(Hector)란 범선을 타고 픽토에 도착했기에 이곳을 뉴 스코틀랜드라 부르게 되었다. 이 뉴 스코틀랜드가 나중에 동일한 의미의 라틴어로 바뀌어 노바 스코샤가 된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에 이어 스코틀랜드 이주민들이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 배경이다. 그들이 타고 왔던 헥터란 배의 복제선이 헥터 헤리티지 부두(Hector Heritage Quay)에서 관광객을 맞는다. 픽토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도심을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건물도 제법 눈에 띄나 도시로서의 활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구도 겨우 3,200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각도로 본다면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꽤 괜찮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 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픽토 출신의 전몰장병 추모탑

 

 

 

 

 

헥터 해리티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픽토 마리나는 픽토에선 그나마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헥터 해리티지 키에 있는 기념관에는 18세기 캐나다로 이주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료를 모아 놓고 있다.

 

 

 

헥터 해리티지 키에 정박되어 있는 헥터 복제선에 올라 선박의 구조나 설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 189명이 승선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겨울철 바다를 보기 위해 픽토 로지 비치 리조트를 찾았다. 육지에 면한 앞바다는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픽토 마리나에 있는 솔트 워터 카페(Salt Water Café)란 식당 메뉴엔 해산물이 많아 홍합과 피시 케이크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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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스 코브 등대와 더불어 노바 스코샤의 자랑거리로 불리는 루넨버그(Lunenburg)를 소개한다. 18~19세기에 지어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건물과 가옥들로 구시가를 이뤄 꽤 인상적인 도시다. 1753년에 설립된 루넨버그는 나중에 독일인들이 들어오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 조선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1995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바닷가에 위치한 아틀랜틱 어업 박물관(Fisheries Museum of the Atlantic)은 건물 전체를 빨간색으로 칠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규모의 수족관이 있고, 어선과 어구를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조그만 목선을 만드는 목공소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부두 쪽으로 나오면 몇 척의 배가 묶여 있다. 운이 좋으면 블루노즈 II호에도 오를 수 있다. 수리 중이거나 출항을 한 경우엔 볼 수가 없다. 테레사 코너(Theresa Conner)란 이름의 범선과 케이프 세이블(Cape Sable)이란 어선에도 올랐다.

 

위에 잠시 언급한 블루노즈 II호에 대해선 간단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루넨버그는 노바 스코샤, 나아가 캐나다 사람들의 긍지를 높인 블루노즈(Bluenose)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노바 스코샤 사람들을 블루노즈라 부르기도 할까. 먼저 캐나다 동전 가운데 10센트짜리 라임의 뒷면을 보면 날렵한 모습의 배가 그려져 있다. 바로 블루노즈다. 블루노즈는 1921년 루넨버그에서 건조되어 평소엔 고기잡이에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경주용 배로 변신하곤 했다. 범선 레이싱에서 미국에게 번번히 패하다가 이 블루노즈가 등장하면서 17년 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캐나다의 자존심을 살린 범선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블루노즈는 노바 스코샤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1946년 하이티에서 침몰한 이후 그 설계를 그대로 사용해 1963년 재현해낸 것이 블루노즈 II이고, 이 또한 노바 스코샤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루넨버그 구시가로 들어서면 이름다운 가옥과 특이한 장식들이 길가에 줄지어 나타난다.

 

 

 

 

 

빨간색을 칠한 목재 창고들이 늘어선 루넨버그 워터프론트는 늘 활기가 넘친다.

 

 

 

 

 

 

북미에선 꽤 유명한 루넨버그의 아틀랜틱 어업 박물관은 5월에서 10월까지만 문을 연다.

 

블루노즈의 옛 영광을 기리기 위해 1963년 재현해 만든 블루노즈 II의 모습

 

 

 

루넨버그 워터프론트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랜드 뱅커(Grand Banker) 식당은 아무래도 해산물 메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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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방이 탄생한 1867년에 설립된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s)은 핼리팩스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다. 영국 빅토리아 가든의 전통을 이어받은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주빌리 분수대나 콘서트를 여는 밴드 스탠드도 빅토리아 시대의 유적이고, 난장이 식물로 만든 카팻 베드(Carpet Beds)도 빅토리아 가든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가든은 1984년 캐나다 역사 유적지로 지정을 받았다. 일년 내내 오픈하지는 않고 대개 51일부터 111일까지만 문을 연다고 한다. 철로 만든 특이한 형태의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초록색이 만연한 정원엔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었고 나무 주변으로는 조그만 호수들이 눈에 띄었다. 도심에 이리 잘 가꿔 놓은 정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그저 감격스런 일이었다.   

 

좀 외곽으로 빠져 페어뷰 론(Fairview Lawn) 공동묘지를 찾았다. 이 세상에 타이태닉 호의 침몰과 엄청난 희생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타이태닉 호가 1912415일 뉴펀들랜드 남부 해역에서 침몰했지만, 핼리팩스 또한 그 사고와 무관할 수 없었다. 영국에서 미국 뉴욕을 향해 처녀항해를 하던 중에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면서 탑승객 2,224명 가운데 무려 1,500명이 넘게 사망하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이 참사로 숨진 희생자 가운데 209명의 시신이 핼리팩스로 실려왔고, 그 중 150명은 아직도 여기에 묻혀 있다. 1,200명 가까이는 시신을 찾지 못 하고 그대로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핼리팩스로 실려온 시신은 세 군데 동동묘지에 나눠 묻혔는데, 이곳 페어뷰 론 공동묘지에 121구가 묻혀 있다. 요즘엔 타이태닉 호의 흔적을 따라 가는 여행 프로그램이 생겨나 이 공동묘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핼리팩스 중심부에 자리잡은 핼리팩스 시타델(Halifax Citadel)은 제법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한다. 시타델 힐이란 언덕 위에 있어 핼리팩스 항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핼리팩스가 자랑하는 역사 유적지로 여길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둘러보는 곳이다. 과거 대영제국 시기인 1749년 영국군 요새로 지어졌고, 별 모양의 석조 건물은 미국 침입에 대비해 1856년에 완공되었다. 언덕 중간에 세워진 타운 클락(Town Clock)은 영국 에드워드 왕자의 명으로 1803년에 세워졌다. 입장료를 안으로 들어가면 군인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운이 좋으면 초병 교대식이나 소총 발사 시연도 볼 수 있다.

 

 

 

 

 

 

 

영국 빅토리아 가든을 본 따 만든 퍼블릭 가든은 녹색의 푸르름 속에 아담한 조형물과 인공 호수가 자리잡고 있어 멋진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타이태닉 호의 침몰로 사망한 희생자 121명의 유해가 핼리팩스로 실려와 페어뷰 론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과거 영국군 요새로 지어진 핼리팩스 시타델은 핼리팩스 항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핼리팩스의 최고 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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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20.06.20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시도르 스트라우스는 브루클린 가족묘에 화장 후 안치되었고 존 하퍼 목사는 런던 덴마크 힐에 묻히고 윌리스 하틀리는 잉글랜드 콜른에 그리고 존 제이콥 애스터는 뉴욕 맨해튼 트리니티 교회 묘지에 묻혔다고 합니다